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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늙음의 의미

by 글쓰는 백곰 2018. 1. 3.

새해가 시작되었다.

내게 있어서 시간이야 어떤 형태로든 흘러가는 것이므로

다시 처음이라는 숫자에 큰 의미를 두진 않는다.

작년에 했던 결심 또하고,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더 많은 결심이 필요한,

딱 다이어리 첫장 정도의 기대감만 존재하는 듯 하다.


새해가 되어 지인들에게서 덕담 카톡들이 날라왔다.

개인적으로 1월 1일 0시에 맞춰서 보내는 카톡을 아주 싫어한다.

통신상의 장애라던지 해서 0시에 딱 맞춰 오기도 힘들 뿐더러

내가 잠들어 있을 수도 있는데, 그 늦은 시간에 뭘 기념하겠다고

그렇게들 카톡을 보내는 건지. 

그것도 인쇄된 듯 만들어진 문구들을.

물론 지인들에게 이런 말들을 하진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건지,

그들이 새벽에 보낸 카톡을 낮에 받아 볼 수 있었다.

지구 반대편에 사니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싶다.


아버지가 보내주신 메세지를 읽는다.

안부를 물으시면서, 본인도 나이가 들어감을 실감하신다고,

잇몸 염증이 나아지질 않아 모두 발치를 해야하며

틀니를 하기로 했다고, 당분간 전화도 힘들것 같다 하셨다.

그 내용을 두고 어떻게 답신해야 하는지 한참을 생각했다.

요즘 같은 장수시대에 60대의 연세가 노쇠한 느낌은 아니긴 하다.

그러나 50대 중반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떠올리면

상대적으로 건장하신 느낌인데.

사람이 누군가를 위로하려면

그사람보다 좀더 나쁜 경우를 들어

작은 위안을 주려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건 사실 본질적인 위로가 아니므로

웬만해선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하는 편이다.


아버지에게 무슨 위로를 해드려야 하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나이듦에 대해,

늙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우리가 청춘이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고, 신경 쓸일이 없었던 

건강이 나빠지는 것이

늙음의 가장 표면적인 신호가 아닐까 싶다.

예전처럼 감기가 쉽게 낫지 않는다거나,

없었던 질환들이 하나둘 생겨나는 것.

아마도 아버지는 그것이 늙음의 증거인듯 느껴져

서운하고 슬픈 마음이 드시는 듯 하다.

그러나 그 병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면

단순히 몸의 기능이 노쇠로 인해 처진다고 단언할 순 없다.

사람의 몸은,

그 살아온 세월에 의해서 상태가 좌우된다.

물론 태어날때부터 조금 약하게 태어나거나

선천적인 질병을 가질수도 있겠지만

보통은 그 사람의 식생활, 운동상태에 많이 영향을 받는다.

아버지는 염증이 심해졌다는 결론만 이야기하셨는데,

애주가인 아버지의 몸상태가 그런 결론을 맞이하게 된것 뿐,

자연스러운 노화의 증세는 아니라는 것이다.

노화도 본인이 얼마나 노력했는가에 따라서 시기가 다르게 오는 것이니까.

참고로.

오빠와 나를 예로 들자면.

술 담배와 불규칙한 생활을 하던 오빠는 

30대부터 고혈압이 왔고, 40대가 되자 당뇨가 찾아왔다.

그러나 술 담배를 하지 않는 나는, 

비록 비만일 지언정 그런 질환은 생기지 않았다.

결국 노화의 강도란

지난 생활 습관의 누적으로 인한 것이 아닐까 싶다.


또한 골똘히 생각해보니,

젊었을 때 괜찮았던 것들이 왜 늙으니 나빠지는가 에 대한 답이

이미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듯 하다.

인생의 수순과 과업이라는 것이 

우리의 노화를 앞당길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감기를 걸리면 쉽게 낫지 않는 것도,

전혀 상상도 못했던 천식이란 병이 생긴 것도,

웬 뜬금없는 전개가 아니라는 것이다.

젊었을 적, 그땐 삶의 목표가 아주 간단했다.

책임져야 할 것들도 중년에 비해선 상당히 가벼웠고,

자기 자신에 주력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에너지를 쏟는 분야가 아주 좁았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가정을 꾸리게 되거나,

책임져야 할 다른 무언가가 생기는 순간부터는

몇배의 신경을 써야 하고, 몇 배의 수고가 더해진다.

젊었을 적엔 아프면 그냥 누워 며칠 쉬면 가뿐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아파도 애 밥은 먹여야 하고, 아파도 청소는 해야한다.

100% 회복할 시간을 갖지 못하는 현실이 되는 것이다.


인간이 불노불사의 존재가 될수는 없겠지만.

예전의 몸상태, 젊음의 순발력을 잃는다고 해서

그다지 상심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며칠간은 서글픈 마음이 들겠지만,

그만큼 나의 에너지가 타인에게 분산되어 힘을 실어준 까닭이고,

그렇게 내 존재가 확장되어가는 과정이기에 감내해야하지 않을까.


이렇게 주절주절 써내려 가곤 있지만,

정작 아버지에겐 다정한 위로를 건네지 못했다.

좀더 곰곰이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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