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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글을 쓰기로 결심하다 -1

by 글쓰는 백곰 2018. 1. 9.

며칠 전부터 남편이 불평하듯 말했다.

"글 좀 써. 요즘 읽을거리가 없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남편이 던진 말에

나는 의아하기만 했다.

읽을거리 없는 걸 왜 나에게서 찾으려 하지?

별 괴상한 소리를 다하는군, 넘겨버렸다.

내가 아는 남편은 소설도 읽지 않는 이과형 남자이므로.

그런데 남편의 요구는 계속되었다.

심지어 어젯밤엔 대놓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글을 써. 자기 이야기를."

그 말에 나는 머리를 한방 얻어 맞은 듯 했다.

글쓰기를 다시 하라니. 그게 쉬운 줄 아시나.


물론 지금 블로그를 쓰고 있긴 하지만,

이 블로그의 정체성이 참 애매한 건 사실이다.

여러가지 컨텐츠를 다룰 만한 전문적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꾸준한 이야기꺼리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저 일상에 관한 것들이 불쑥불쑥 일정치 않게 쓰여질 뿐이다.

게다가 글을 쓰는 톤도 일정하지 않다.

어쩔 때는 무척 감상적이다가도,

어쩔 때는 아주 사무적이게 되어버린다.

문득 내가 글쓰는 컨셉을 잘못 잡았다는 반성이 들기도 했다.

남편도 내 블로그 글을 읽으면서

어떤건 억지로 쓴 듯한, 시간에 쫓기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지적을 하곤 했다.

쓰는 입장에서는 남편에게 주먹이라도 날리고 싶은 심정이지만

슬프게도 그것은 사실이었다.

결국 구차하게 변명을 늘어놔야 했는데, 

이러면서 글을 써야 하나 라는 회의감이 잦아졌다.


나는 정보 전달에 관한 글을 쓰는 데에 소질이 없다.

해외생활이라는 컨셉으로 미국 생활을 써보고자 했지만

단순한 정보 전달을 하는 것은 아주 지루하고 골치가 아팠다.

나의 느낌이나 생각들을 중간에 껴 넣을 수도 있었지만

적응의 문제이지, 감상의 문제가 아닌 화제들을 다루면서

스스로도 상당히 재미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주부의 삶이라는 것이 무척 단조롭다.

무얼 쓸까, 어떤 건수가 있을까,

그런 맘으로 일상을 쥐어짜는 것도 

일종의 의무감처럼 느껴져 즐겁지가 않았다.

그래도 글쓰는 것은 근육을 키우는 일과 같으니

잊지 말고 훈련하듯 쓰자고,

일 주에 두 번은 무슨 글이라도 쓰자고 마음 먹었었다.

모든 글이 좋을 수는 없는 거라며.


그러던 나에게 글을 쓰라고 남편이 제안했을 때

(여기서 글이란 창작은 이야기한다)

나는 마냥 기뻐할수도, 

그렇다고 단칼에 거절할수도 없는

복잡한 상념에 사로잡혔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 

내가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그것도 여기 미국에서?


글을 쓰는 건 너무나 좋아하던 일이었지만,

그것으로 먹고 살만큼의 천재성이 없었다.

먹고 살기도 바쁜 시간들의 연속이었으며,

내가 선택한 글의 장르는 나와 맞지 않았다.

그래서 끝내는 손을 놔버렸다.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겠노라고,

무슨 뜨겁고도 지랄맞은 연애를 끝낸 사람마냥

유난스럽게 이별을 했었는데.

다시 시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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