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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글을 쓰기로 결심하다 -3

by 글쓰는 백곰 2018. 1. 11.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회사를 다녔다.

몇번의 이직이 있었고,

20대에는 일과 방통대 공부를 병행했었다.

전공을 국문학과가 아닌 교육과를 선택했었는데,

그 쪽이 좀 더 비전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때 배운 인간심리와 문제행동에 대한 철학들이

나중에 글을 쓸 때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열중하던 방통대를 졸업하게 되니

다음엔 무엇에 열중해야 하나 고민이 생겼다.

그 때 친구 하나가 글을 써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러나 다시 시를 쓰기엔 내 감성이 예전의 것이 아니었다.

장르를 바꿔볼까 생각하던 차에,

무심코 본 드라마의 주인공이 방송작가 공부를 하는 내용이 나왔다.

저거다 싶었다.

드라마를 쓰는 것이라면,

글 쓰는 것만으로도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확률이 무척 가깝게 느껴졌다랄까.


한국방송작가교육원에 면접을 보고

다행히 합격하게 되어 그렇게 드라마 공부가 시작되었다.

여의도에 있는 교육원에 가기 위해서

나는 회사에 거짓말을 하고

(평생교육사 자격 실습을 해야 자격증이 나온다며)

일주일에 한번, 퇴근을 한시간 먼저 하곤 했다.

교육원으로 향하던 길,

그 시간은 서서히 해가 지는 순간이었는데

흔들리는 전철안에서 뿌옇게 하루라는 공기가 스러져가고 있었다.

그 아득한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묘한 황홀감에 사로잡히곤 했다.

드디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러 간다,

그것도 남의 도움 없이 순전한 나의 실력으로.


교육원에서의 첫날을 기억한다.

각자 자기소개 비슷한 걸 하는 거였는데,

왜 드라마를 쓰고 싶은가 하는 답변도 해야했다.

동기들의 자기소개를 들어보니

대개가 문예창작과나 국문과 출신이었다.

그들의 목소리엔 어떤 자부심이나 당연함 같은 것이 엿보였다.

내 순서가 되자 어쩔수 없이 간단한 소개를 했는데,

교육과를 전공했지만 이 역시 드라마를 쓰는데 좋은 자양분이 될수 있다고 더듬으며 이야기했다.

내 생애에 그렇게 떨린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 수업이 끝난 후, 강의실을 둘러보다가 낯익은 얼굴을 만났다.

고등학교때 나를 ‘문학소녀’라고 빈정대던 그 친구였다.

“아까 덜덜 떨면서 이야기한게 너였더라구,

난 그거 듣다가 저 여자 우는게 아닐까? 했지 뭐야.”

깔깔대며 곁눈질 하는 저 눈.

역시나 사람은 변하지 않는 법이었다.


교육원에서는 4단계로 승급 심사를 했는데,

우선 1단계 반에서는 드라마 기초 작법에 대해 공부하고

2단계 부터는 본격적으로 단막극 창작을 하며

3단계는 좀더 심화된 내용을 배운다.

4단계는 최정예 학생들이 데뷔를 하기위해 공부하는 반이다.

피라미드처럼 인원이 갈수록 적어지는 시스템이었고,

각 단계로 올라가려면 작품을 제출해서 심사받아야했다.

교육원에서 4단계에 올라가는 것이 모두의 목표였다.

그러나 나는 3단계에서 4단계로 올라가는 것을 포기했다.

4단계는 낮에만 수업이 있어서,

그야말로 드라마에만 매진하는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돈을 벌어야했다. 생계를 쉴수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길게 쉰 적이 없었는데도 여유돈이 없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곤란한 현실을 감내하고서라도 밀고 나갈만큼

내가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드라마를 쓰겠다고 결심한 것은

김운경 작가처럼 소탈하고 서민적인 글을 쓰고 싶어서였다.

한지붕 세가족, 서울의 달, 파랑새는 있다 등 그가 쓴 글은

모두가 우리의 이웃같았으며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어서 실감났다.

그러면서도 따뜻했고 어떤 인간적 유대 같은 것이 존재했다.

그런 드라마를 쓰고 싶었다.

그렇기에 나의 글들은 그런 지향점을 향해 달려갔고,

그다지 나쁘지 않은 결과물을 만들어냈지만,

실상은 너무나 참담했다.

이제 사람들은 서울의 달 같은 드라마를 보고 싶어 하지 않으며

방송사에는 더욱 자극적이고 시청률을 올릴 것들을 선호한다.

좀더 세게, 좀더 비윤리적이게.

나는 그런 것을 쓰려고 1년 넘는 시간을 버린 게 아니었다.


게다가 내가 한창 드라마를 쓰고 있던 그 시기에

단막극 공모전 자체가 다 사라져버리고 만다.

예전에는 방송사마다 단막극 공모전을 실시하여

방송도 하고, 그 작가들을 키워주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미 완성되어진 미니시리즈물이나

외주 제작된 검증받은 드라마만 인정받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결국 단막극으로 데뷔하려던 꿈은 사라지게 되었고,

드라마 기획사에 들어가 열정페이를 받으며 기회를 엿보거나

아예 처음부터 16부작짜리 미니시리즈를 써서 공모전에 내거나

그렇게만 해야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소위 말해 빽없으면 힘든 것이 방송계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드라마 쓰기를 그만두었다.

단막극 6편을 썼었고,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KBS 단막극 공모 예선에 붙은 적도 있고

방송작가협회의 공모전 본선에 올라간 적도 있고

보건복지부의 공모전 본선에도 올랐었다.

그러나 수상을 할만한 필력은 되지 못했고,

그것을 더 키우고 싶은 마음도 사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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