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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글을 쓰기로 결심하다 -4

by 글쓰는 백곰 2018. 1. 13.

극본 쓰기를 그만두고 나니

더이상 여한이 없을 것만 같았다.

일년 반이라는 시간동안

정말 많은 책을 읽었고(작법책과 고전)

그렇게 글을 열심히 써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일을 다니면서 틈틈이 글을 쓰는 것이라

언제나 잠이 모자랐다.

그러나 그 피곤함마저도 사랑할 만큼

글쓰기에 푹 빠져있던 시간이었다.


기초반에서 작업을 배운 후 부터는

각자의 대본에 대한 비평을 하는 수업이 이어졌다.

아무래도 경쟁하는 구도이다 보니

비평이라기 보다는 비난에 가까운 말들이 오고갔으며

그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들도 생겼고

작품 변호에 열올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마저도 즐거웠다.

비평해야할 대본이 정해지면

나는 그 대본을 단락으로 나누어 줄거리를 요약하고

대본의 장점과 단점을 2장 정도로 정리해서

글쓴이에게 전해주곤 했다.

그렇게 정리해서 보는 것이 나의 공부였고

내가 씬들을 어떻게 보았는가 하는 것이

작품에 빠져있어 객관적이지 못한 작가의 시선을

어느정도 정리해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수업이 끝난 후, 개인적으로 비평문을 전해주면

대다수의 동기들이 아주 기뻐했다.

더러는 자신의 순서를 기다렸다고 할만큼.

그래서인가, 내 결혼식 사진에는

작가교육원 동기들의 얼굴이 가득하다.

교육원 수료후, 몇 달 지나 어떤 동기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수업시간에도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사람이었고,

개인적인 친분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아주 오랫동안 글쓰기에 매달려왔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런 확신도 주지 않는 결과에 절망했고

이제 그것을 놔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에

나와 같은 수업을 듣게 되었다고 했다.

자신의 글을 수업시간에 비평하게 되었을 때

내가 해준 비평을 보고 용기를 얻어서 글쓰기를 이어갔다고 했다.

그리고 드디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녀의 글은 내가 읽은 대본중 손에 꼽을 정도로 특별하고 위트가 있었다.

블랙코미디같으면서도, 아주 날카롭게 파고드는 조소,

그 흥미로운 대본을 잊을수가 없다.

그러나 수업 시간에 그녀는 얼마나 공격을 받았던가,

그 특별함을, 개연성이 없는 억지웃음으로 치부하고

소재가 맘에 들지 않는다며 얼마나 비난을 해대던지.

나는 좋기만 했는데. 근사했는데.

그런 그녀에게 나의 글이 위로가 되어주고 용기가 되었다니

다행이다 싶었다. (음… 가만… 내가 신춘문예를 탄생시켰나…? ㅋㅋ)

그러나 나는 더이상 대본은 쓰지 않는다고 그녀에게 답장했고

그녀는 차라리 비평쪽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의했다.

엥? 좀 황당한 이야기였지만,

그녀는 그게 오히려 나의 성향과 맞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결론은.

이런 저런 글쓰기의 경험들을 떠올려 봤을 때

내가 잘 쓰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그 장르를 알지 못하므로

우선 그것을 알아가는 작업을 해야한다.

소설, 비평, 수필, 기타 등…

한번도 해보지 않는, 제대로 배우지 않은 장르이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자유롭게 기술할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틈이 나는대로 여러종류의 글을 써볼 예정이다.

다 해봐야 알지 않겠는가.


마지막 대본을 쓰던 그 기억이 난다.

퇴근 후부터 시작해서 종일 앉아 노트북과 씨름하며

밤을 새고 새벽 빛을 맞으며 탈고했을 때의 그 희열을.

물론 남들이 보기엔 보잘것 없는 존재의 글이지만

나에게는 더없이 특별하고도 소중한,

산통 속에서 태어난 자식 같은 글들이었다.

애 낳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하나하나 내 손으로만 만들어진 것이었고

생득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애틋했고, 아팠다.


결혼 후 한동안 글쓰기도, 독서도 잘 하지 않았다.

이제와서 그것을 시작하자니

아직 서툰 부분이 많고, 어색하기도 하다.

그래도 이런 시기가 있어야 성장하리라 믿는다.

더러는 맘에 안드는 글도 나오겠지만.

어쩔수 없다. 원래 글이란게 그렇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것을 일깨워준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러나 제발 ‘대박’나길 바란다는 말좀 그만 하길…

남편은 마누라가 글을 엄청 잘 쓰는 줄 안다.

부담스러워 죽겠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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