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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마누라는 쇼핑백 호더

by 글쓰는 백곰 2018. 1. 17.

나는 쇼핑백을 차곡차곡 모은다.

자질구레한 비닐백도 차근차근 모은다.

그것들을 비축해두고 있으면

나름 뿌듯하고 든든한 느낌이 든다.

남편은 그런 나를 호더라며 놀리곤 한다.


* Hoarder : 비축하는 사람, 저장하는 사람

사전의 뜻은 이러하다.

TV에서 몇번의 사례를 본 적이 있다.

집안에 온통 쓰레기를 모아놓거나

동물들을 주체못할 정도로 모아 키우거나 하는 경우들을.

둘다 비난을 받는 이유는

관리가 전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모으는 것에 혈안이 되어서

그것들을 가지런히 관리할수 없다는 것.

그들의 심리를 들어가보면

과거의 어떤 기억들을 해소하기 위해서,

혹은 현재의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서,

결국 정신적이고도 심리적인 문제로 인해

문제 행동이 일어난다고 정의하는 듯 하다.


뭐 멀리서 찾을 것 없이…

내가 아는 연로하신 분들은

길 가다가도 쓸만한 것들이 있으면

가차없이 주워오신다.

제3자의 입장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그 물건이 집에 없는 것도 아니고,

끙끙대며 들고 올만큼 상태가 양호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가져오지 못해 안달이시다.

아마도 어려운 시절을 사셨던 분들이기에

쉽게 버리는 요즘 사람들의 물건들이

너무나 멀쩡해보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타인이 쓰던 것에 대한 어떤 의구심도 들지 않을 만큼 말이다.


문득 우리 할머니를 생각해본다.

물론 버려진 것을 가져오시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집에 무언가를 많이 쟁겨놓는 것을 좋아하셨다.

혼자 사심에도 불구하고 쌀도 두 가마 이상,

보일러 기름도 세 드럼통 이상,

김치도 김치냉장고 가득.

결국 다 먹지 못해 묵어버린 쌀로 억지로 떡을 뽑고,

김치 역시 다 쉬어버려 매일 지져 먹기만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그때 그때 구하는 것의 상큼함을 포기한다.

오로지 자신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서.

아마도 그런 심리가 좀더 병적으로 뻗어나가면

가차없이 쓰레기를 모으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해보았다.

사람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공간에 대해서

어느정도의 협소함이 존재해야 아늑함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생각.

어떤 종류의 사람들은 너무 넓은 공간에 자신이 놓여지는 상황자체를 어려워한다.

게다가 자신만의 아지트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지 않을까.

사람으로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공허함을

물건을 쌓아 공간을 아늑하게 만듦으로써

일종의 안도감을 느끼는 것.


호더라는 명칭 자체가 나랑은 별로 상관이 없기에

남편이 놀리는 것 자체는 그냥 넘어갈수 있지만

사실상 그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라는 것이

그다지 완고하고 정확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습관처럼 모아온 비닐과 종이백을 무심코 바라보고 있노라니

사람의 집착이란 별의별 형태로 나타나는구나 싶다.

물론 스스로는 쓸모가 있어서 모아놓은 거라고 항변하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니 그다지 쓸 일도 없다.

단지 과거에 그러했던 기억들에 갇혀서

현재의 상황 역시 과거처럼 헝클어놓는 것일 뿐.


버리고,

때로는 외면하기도 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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