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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글을 쓰기로 결심하다 -2

by 글쓰는 백곰 2018. 1. 9.

처음 글쓰기에 매력을 느꼈던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다.

매일 일기를 작성하는 숙제가 있었는데,

담임선생님은 내 일기를 무척 좋아하셨다.

일기장에는 선생님이 그어놓은 빨간 밑줄이 가득했고,

나의 하루를 구경한 것에 대한 애정어린 소감문이 써 있었다.

평범하고 주목받지 못하는 내가 

선생님과 그런 교류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흥분되는 일이었는지.

또한 선생님은 수업 중에도 종종 내 일기가 재미있다고 말하곤 하셨다.

그 때 이후 나는 글쓰기에 용기를 얻어

학예회에 올릴 대본을 쓰기도 했다. 

아마도 그것이 처음으로 창작해본 글이 아니었나 싶다.

몇번의 극본을 써보았는데, 재밌는 작업이었다.

그때의 습작은 마치 놀이처럼 즐겁고 흥미롭기만 했다.


중학교에 가니 글쓰는 것의 흥미가 떨어졌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 앞 서점에서 '홀로서기'라는 시집을 발견했다.

그때 받았던 충격이란.

사람을 홀릴 수 있는 게 이런거구나,

누군가의 마음이 이렇게 고스란히 느껴질수도 있구나,

짧으면서도 강렬하고 아름다운게 존재하고 있구나,

그 때부터 시라는 장르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은유, 노래하는 듯한 운율,

매력적이고도 황홀한 세계에 발을 디딘 듯 했다.

그렇게 시인이라는 첫번째 꿈을 꾸게 되었다.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열심히 써댔고,

종종 교내 백일장에서 상을 타곤 했다.

선생님들은 눈에 띄지도 않고, 성적도 별로인 내가 써내는 글을 

믿을 수 없어 했다.

그래서 더러는 교무실로 불려가기도 했고

어쩔때는 그게 슬프게 느껴지도 했지만, 

그렇다고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그 시기의 나는 무척 자존감이 낮았기 때문이다.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꿈은 더욱 멀어졌다.

그래도 문학을 좋아하는 나는 꾸준히 시를 썼고

학교에서도 어느정도 인정받기 시작했다. 

시 쓰기를 좋아하던 같은 반 아이 하나는

(문학을 좋아하나, 쓰는 데 소질은 없었던)

매번 백일장을 휩쓰는 나에게

'여어~문학소녀~'라며 비아냥 대곤 했다.

대꾸는 하지 않았다.

그냥 그 아이의 열등감이 유치하게 느껴졌을 뿐.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어쩌다가 나는 반장이 되었다.

상업고를 다녔지만, 상업과엔 어울리지 않는 나였기에

취업 면접마다 줄줄이 떨어지곤 했다.

반장이 자꾸 낙방을 하니 담임선생님도 무척 신경이 쓰인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은 흥분된 목소리로 나를 부르시며

가위로 오려낸 신문지 한 쪽을 내밀었다.

어느 4년제 대학 문예창작학과의 입학전형 내용이었다.

그저 실기시험 한번만 보면 입학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시요강이었다.

그걸 건네며 너무나 환하게 웃어주던 담임선생님 얼굴이 지금도 잊혀지질 않는다.

나 역시 설레고 들뜨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 엄마에게 신문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아주 쉽고 간단하게 묵살되었다.

대학을 보내줄 형편도 못되지만

상고를 나왔으니 당연히 취업할 줄 알았던 엄마로썬

대꾸할 가치도, 재고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그 순간을 기점으로

나는 내가 정말 꿈을 꾸고 있었구나

가당치도 않고, 실현될 수도 없는, 

그런 꿈을 꾸었구나 싶어졌다.

바로 현실로 돌아와야 했다. 

어차피 시로 먹고 살 가능성도 없어 보였다.

그렇게 사춘기가 끝남과 동시에 내 꿈도 끝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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