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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나는 꽃동네에 산다.

by 글쓰는 백곰 2018. 4. 5.

나는 Flora Vista Ave에 산다.

말 그대로 꽃동네에 살고 있다.

작년 8월에 이사 왔을 때만 해도

꽃이 참 많은 동네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게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한창 더울 시기였고,

꽃들을 위해 계속해서 뿌려지는 물줄기들 때문에

고인 물들이 풍기는 냄새는 쾌쾌하기까지 했다.

전에 살던 텍사스에서는 꽃 자체를 보기가 힘들었다.

워낙 햇살이 강하고 더운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타클라라의 온후한 기온은 식물들이 자라기 좋은 곳이고

꽃을 좋아하는 미국인의 정서 답게,

거리에는 여러가지 꽃들이 넘쳐나고 있다.

예전에는 그냥 별 감흥이 없었는데,

3월부터 봄이 시작되자 아주 근사한 향기가 공기를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굳이 꽃 가까이 가지 않아도,

거리는 꽃내음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한달이 지나도록 향긋한 공기가 이어지고 있다.





(우리 아파트도 꽃동네의 명성에 뒤지지 않는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면 산책을 하곤 하는데,

그때마다 길가의 꽃들을 실컷 구경하곤 한다.

사실 꽃을 좋아하진 않는 편이다.

무엇이든 키우는게 자신이 없고,

생명을 유지시킬 섬세함도 없어서

꽃 선물을 받으면 아주 난감할 때가 많다.

그렇기에 길가에 피어있는 꽃들이 더 이뻐보이는것 같다.

부담없는 선에서 가볍게 보는 것이.


(산책하며 찍은 꽃들. 이름을 아는 게 하나도 없다. ㅋ)


4월이 되어 꽃이 흐드러지게 필때,

특히 한국에서 벚꽃이 만개할 때가 되면

나는 우울한 기분에 젖어 있곤 했다.

모든 감정엔 그것을 시작하게 하는 기억이란 게 존재하는데,

나에게 벚꽃의 4월이란

엄마가 죽음을 앞두고 있던 때로 고정되어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마르고, 생기를 잃어가는 엄마와 다르게

바깥세상은 너무나 환하게 피어있었고, 아름다웠다.

그래서 더욱 가슴이 미어졌다.

시간이 흘러 가는 것이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나 좋은 날들인데, 엄마, 어서 일어나서 구경해야지,

울먹이던 기억은 어제처럼 생생하다.

그래서 벚꽃이 피는 4월이면 나는 마음깊이 앓곤 했다.



이제 벚꽃이 없는 미국에 와서 맞이하는 4월.

벚꽃이 지천이던 그 땅은 아니지만

여기서도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그 아찔한 아름다움 속을 거닐며

이제서야 그 눈부신 광경이 슬프지 않다.

어쩌면 발을 딛고 있는 땅이 달라져서일지도 모르겠지만,

8년이란 시간이 주는 감정의 무뎌짐과

지난 시간에서 갇혀있기만 했던 시절을

다시 또다른 누군가와 새롭게 추억하기 위해서라도

아름다운 이 순간을,

다시 아름답게만 기억하자고,

그렇게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괜찮아요,

이렇게 미소지을 수 있는 내가 되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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