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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블로그를 운영한다는 것

by 글쓰는 백곰 2018. 6. 25.

약 두 달간 글을 쓰지 못했다.

아이가 학교에 간 사이 블로그를 쓰곤 했는데

그마저도 시간이 여의치 않을 정도로 바빴다.

5월엔 남편의 해외출장이 있었는데

미국에서 아이와 단둘이 있기는 처음이라

뭔가 긴장되던 탓에 글을 쓸 여유가 없었고,

그 이후로는 아이 학교 행사가 줄줄이 계획되어

그것들을 따라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6월이 되자 학교 방학이 시작되었고,

아이와 단둘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글쓰는 것이 더욱 힘들어졌다.


뭐, 얼마나 대단한 것을 쓰길래 그러냐고 한다면

입이 열 개라도 할말이 없겠지만,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상당한 노력을 동반하는 작업이라

아이가 옆에 있다거나

주변이 산만해질 여지가 있다거나 하면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다.

집중해서 쓰게 되어도 종종 발견되는 오타가 있고

미처 생각지 못한 오류들이 발생하는데

아이와 함께 있을 때 쓴다니, 내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블로그를 꾸준히 쓰시는 분들을 보면

참 대단하다, 감탄하곤 한다.

필력이 좋다거나 화제성이 높다거나 하는 차원은 제치고서라도

하루하루 자신의 일상을 적어나간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성실한 행위인지.

게다가 자신의 일상을 공유한다는 것은

예기치 않은 다수의 적을 생산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각자 가지고 있는 생각의 패턴이 다르므로

글에 대하여 코멘트를 다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이 글쓴이가 의도와는 다르게

따끔하게도 느껴지고, 불편할 때도 있기 마련이니까.

글 쓰는 사람들이 감당해야하는 무게가 그런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를 소모하는 일이다.

뭐랄까,

내가 아닌 것,

어디서 주워들은 것을 쓴다면 누가 믿겠는가,

그나마 가장 자신있는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아닐까.

그러다보니 나란 인간의 그릇이 블로그를 통해 공개되고

어쩔때는 위로와 격려를 받기는 하지만

그 안에서도 상처받을 여지를 고민해야 하는게

블로그 쓰는 사람들의 고뇌가 아닐까 싶다.


두 달 동안 블로그를 쉬면서 생각했다.

내가 블로그를 통해 얻고자 하는게 무엇일까.

그동안 일주일에 2,3회는 써왔었는데

그렇게 쫓기듯 쓴게 과연 행복했는가,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이었는가를 돌아보게 되었다.


처음에 블로그를 시작할 때만 해도

나란 사람의 그릇이나 필력의 변변찮음을 알기 때문에

‘해외생활'이라는 흥미로운 테두리 안에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블로그를 만들어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그런 종류의 글을 써보기도 했는데,

막상 쓰고 보니 이게 내 체질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나는 여행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쇼핑도 즐기지 않으며,

호기심이 많다거나 발랄한 사람도 아니어서

해외생활에 대해 뭘 쓰고 싶어도 쓸 게 없었다.

천성이 그러하니 그런 내용을 쓰는게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가장 잘하게 되어있다잖는가.

나는 여행, 쇼핑, 정보 제공등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이제 1년이 좀 넘은 미국 생활에서

이 계통은 내가 통달했지 싶은 부분도 없으니

참 시시하고 재미없는 블로그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글을 써야 겠다는 강박에

어쩔수 없이 책에 대한 리뷰라도 시작하자 싶었다.

그래서 책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나는 보통 소설을 리뷰하고,

줄거리와 감상 정도를 게시하곤 했는데

그나마도 그런게 전혀 불가능한 소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줄거리랄 게 별로 없는 소설은

(밀란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같은)

읽어도 뭘 쓸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내가 읽어도 영 아리송한데 뭘 쓴다는 말인가 싶고,

그래도 어떻게 좀 정리해볼까 생각하다보니

머리가 터질 지경이 되었다. 스트레스가 되었다.

무슨 밀린 숙제하듯이 책을 읽는게 기쁘지 않았다.

그럼 도대체 나는 블로그에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하는 걸까?

그런 생각들을 했다.



결론은.

그냥 일상사를 편히 쓰자.

쫓기듯이, 괜히 할말도 없으면서 쥐어짜며 쓰지 말자.

뭐, 책 이야기가 하고 싶으면

좋았던 것들에 대해서만 쓰자.

애정없는 것들에 에너지를 쏟지 말고,

그렇게 괜한 실수 만들어내지 말자.

뭐 그런거다.

두 달 동안 블로그를 쉬면서

어깨에 잔뜩 들어갔던 힘을 빼는

그런 시간을 가진듯 하다.

이젠 조금 편하게 가야겠다.



(꼭 빽빽해야만 풍경은 아닐테니까.)


그리고…

이제 아이가 잠들어 있을 때 블로그를 써야겠다.

이러다가 블로그 사라지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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