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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갑자기 집을 사게 되었다 - 1

by 글쓰는 백곰 2018. 7. 9.

갑자기 집을 사게 되었다.

물론 예전부터 막연하게나마 소망하던 일이었지만

어디 한번 알아볼까 하고 구체적으로 움직이자

8일만에 집을 계약하게 되었다.

모든 시스템이 느리고 까다로운 미국에서

이런 큰 일을 삽시간에 했다는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 정 들었는데.)


지난 주 월요일,

나를 지도해 주시는 권사님의 소개로

리얼터 한분을 소개 받았다.

그분께 모기지 담당자를 두군데 소개받고

(미국은 집을 사기전 돈 문제부터 해결되어야 한다)

그들이 원하는 서류를 신속하게 준비했다.

그렇게 목요일에 모기지 승인이 났다.

미국에 온 지 2년이 안 되었고,

미국 회사에 온지 2년이 되지 않았지만

남편의 이전 근무내역이 많은 점(한국포함)과

영주권 소유, 현재 근무하는 회사의 건전성등이 고려되어

나쁘지 않은 대출금리로 모기지를 얻을 수 있었다.


모기지 승인이 났으니,

우리 예산안에 맞는 집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우선 학군이 좋은 동네여야 했고, 치안도 좋아야 했으며,

남편의 회사와 너무 멀지 않은,

이왕이면 규모도 지금 사는 아파트보단 큰 곳을 원했다.

리얼터가 몇군데 추천해 주기도 했지만,

요즘은 인터넷 검색 환경이 잘되어 있어서

리얼터 닷컴이나 질로우 등에서 집을 검색할 수 있다.


한국은 부동산에 내놓기만 하면

연락을 받고 그때그때 집을 보여주는 구조이지만,

미국은 집 보여주는 날과 시간을 정해주는데

이 오픈하우스는 대개 주말 오후에 3~4시간 개방된다.

그 땐 집에 거주자가 없으며,

리얼터가 혼자 집에 남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집 관련 정보지를 나눠주고 설명해 준다.

집을 보러 갈 때 굳이 리얼터와 함께 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는 전문가의 손길(?)을 원했기 때문에 같이 다녔다.


첫날의 쇼킹함을 뭐라 표현할까.

처음 보러 간 집은 하우스였다.

인터넷으로 검색 했을 때 건물 외관만 보인 게 수상쩍었지만

의외로 가격이 저렴해서 시도해볼 만 하겠다 싶었다.

그렇게 집에 발을 디딘 순간,

아니 문을 여는 순간 우리는 깨달았다.

싼 것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을.

방마다 쓰레기가 가득 차 있었고,

거실과 주방은 헛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벽면이 다 뜯어져 있었고, 심지어 악취까지 났다.

뒷마당은 무슨 자연재해가 쓸고 간 듯 했다.

도대체 거기 살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폐가에 몰래 숨어 들어와 살던 이들이 아니었을까???

충격에 휩싸여 있는 우리에게 리얼터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고쳐 사는 집이야~”

어떤지… 옆집들 시세에 비해 터무니 없이 싸더라니.

그래도 집 자체가 우리 예산에 빠듯한 금액인데

건물 내부를 다 바꾸고 살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그냥 충격적이었다. 저런 집이 매물로 나오다니.

밀피타스가 냄새가 많이 나는 동네라고 해서 좀 꺼려졌는데

이건 뭐… 밖보다 집안이 더 냄새가 많이 났다.

이로써 하우스에 대한 나의 환상이 박살났으며,

밀피타스의 대한 이미지마저 못살 동네로 각인되었다.


두번째 집을 보러 갔다.

프리몬트에 있는 타운하우스였다.

결코 만만한 가격은 아니었지만

우리 남편은 언제나 계단있는 집을 꿈꿔 왔고,

인터넷으로 구경한 이 집은 내부마저 훌륭했었다.

그 집에 들어간 순간 우리는 홀딱 반해버렸다.

고급스러운 나무바닥, 널찍한 구조에

환하게 빛이 들어오던 멋진 집이었다.

게다가 처음 봤던 집에서 충격이 컸으므로

극과 극의 경계에 서 있자 얼이 나갈 정도였다.

우리는 당연히 그 집을 원했다.

다음 세번째 집을 보러 가는 중에도

우리는 두번째 집을 꼭 사야겠다고 내내 속삭였다.


세번째 집도 프리몬트에 있었다.

아파트였지만, 계단이 있는 집이었는데 집 값이 쌌다.

맘에 꼭 드는 집은 아니었지만 구경해 보고 싶었다.

이 가격에 이런 집은 과연 어떠한가 하고.

역시, 그 가격에 그런 집은 그러했다.

구조가 좋지 않았으며, 길 한가운데에 있었고,

집 자체가 작은 편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건데, 그 집은 딱히 임팩트가 없었던 듯 싶다.

두번째 집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으니 말이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면서 리얼터에게 두번째 집을 이야기했다.

꼭 사고 싶노라고.

그러자 리얼터 분의 솔직한 이야기가 들렸다.

예를 들면…

우리가 인터넷에서 본 금액은 100만 달러라 해도

실제적으로 입찰을 넣어볼만한 금액은 110만 달러 이상이라는 것이다.

그 금액이 왜 다른가는 근처 다른 부동산들의 시세를 보면 알수 있는데

비슷한 부동산이 120%의 가격으로 최근에 팔렸다 한다.

그러니 이것은 오퍼를 넣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게다가 이마저도 경쟁자들이 몰리면 더 금액이 높아지므로

감당하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정해진 가격으로 부동산을 올려놓고

그 가격으로만 사는 경우가 많다.

더러는 하자를 핑계삼아 깍는 경우는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특히 산호세에서는

한풀 꺾이긴 했지만 여전히 부동산 시장이 과열이어서

내놓은 가격으로 파는 경우가 거의 없다.

아마도 그 금액의 10~20%는 더 예상해야 한다고

리얼터가 알려주었다.


집 3군데 봤을 뿐인데,

어찌나 상실감이 크던지.

과연 이 곳에서 우리가 집을 살 순 있을까,

집에 돌아오면서 어찌나 심난하고 우울하던지.

마음에 들지도 않는 집을

거액의 모기지를 빌려서 사야하는게

우리 수준에 맞는 것일까, 괴로웠다.

(2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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