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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마음 - 나쓰메 소세키

by 글쓰는 백곰 2017. 9. 29.

'선생님과 나'

고등학생이던 나는 가마쿠라 해변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그 후 그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따르게 되었다.

고향을 떠나 도쿄에서 대학생활을 하던 나는 선생님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러나 좀처럼 속마음을 내보이지 않는 선생님에게 서운할 때가 많았다.

선생님은 일반인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학식이 깊어 보였으나 학자도, 교사도 아닌 무직이었다.

그렇다고 병약하지도 않아보였다.

언제나 자기 폄하를 하고 (겸손의 차원이 아니라) 속세의 어느 것에도 뜻을 두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고향집에서 아버지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급히 고향집으로 내려갔으나, 아버지는 신장병으로 쓰러졌다는 말과 달리

어느정도 건강해보이셔서 큰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다.

다시 도쿄로 돌아왔을 때, 선생님은 언제나 준비해두지 않으면 안된다며

아버지의 유산문제를 미리 정해놔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속세의 어떤 것에도 신경쓰지 않는 분이 그런 말을 하니 뭔가 의아했다.

내가 알고 있던 선한 사람도 어느 순간 마음이 바뀌어 악인이 될수 있다며

날카롭게 반응하는 선생님의 모습은 의외였다.

그러나 본인의 경험에서 나왔을 그런 충고에 대해, 선생님은 아무런 말도 보태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게 거리를 두고, 자신의 속내를 내어보이지 않는 선생님께 나는 언제나 서운했다.

그러던 나는 어느새 대학 졸업을 하게 되었고, 다시 고향에 내려가게 된다.


'부모님과 나'

도쿄에 있는 대학을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잔치를 벌여야 한다는 소박한 시골사람들이 우리 부모님이다.

형은 이미 자신의 출세를 위해 타지역으로 진출해 바삐 살아가고 있었고

여동생은 가정을 이루고 이미 임신한 상태였으므로 고향집에 오지 못했다.

아버지의 병세는 나날이 나빠지고 있었고, 마지막을 준비해야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집에 머무는 동안 선생님께 이런 저런 편지를 보냈지만, 한번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서운한 마음에 기가 죽어있을 무렵, 어머니는 내게 일자리를 부탁하라며 선생님께 편지쓰기를 권했다.

결국 나는 어쩔수 없이 그런 내용의 편지를 선생님께 보냈지만, 역시나 답장이 없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때 일자리라도 확정이 되면 아버지께서 편히 가시지 않을까 하는 어머니의 바람이었지만

내가 아는 선생님은 그런 것을 해보지도, 하고 싶지도 않은 분이었다.

아버지께서 오늘 내일하며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동안, 집으로 전보가 왔다.

선생님이 보내신 전보. 어서 와달라는.

그러나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아버지를 두고 갈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못간다는 전보를 다시 치고 이틀이 지나 또 전보가 왔다.

오지 않아도 된다는 짤막한 전보.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어 하루하루 아버지 옆을 지키고 있었을 때,

아주 두꺼운 편지가 내게 도착했다.

선생님께서 보내신 편지였다. 

경황이 없어 뒷부분만 살짝 훔쳐보았는데,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선생님이 자살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선생님과 유서'

선생님은 편지로 유서를 보내온 것이었다.

어떤 사람에게 정을 주지도, 세상에 관심이 있지도 않은 선생님이

드디어 나에게 자신의 지난 과거를 알려주기로 결심한 것이다.

왜 그렇게 타인을 의심하고, 자신을 혐오하는지를.

선생님은 대학생이 되기 전에 부모님을 병으로 잃었다.

부모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작은아버지에게 선생님의 미래를 부탁하였고

그만큼 작은아버지는 부모님에게, 선생님 자신에게도 믿을만한 존재였다.

작은 아버지는 선생님의 집과 자신의 집을 오가며 재산관리를 해주었고,

선생님은 시골에 있는 집을 떠나 도쿄에 있는 대학교를 다니며 가끔씩 고향을 방문하곤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작은아버지의 행동은 무언가 개운치 않게 변해갔다.

아직 학생인 선생님을 자신의 딸과 결혼 하라며 권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키지 않는 선생님은 거절을 하게 되고, 그때부터 작은아버지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또한 작은 아버지가 선생님의 재산을 거의 빼돌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믿어 의심치 않았던 존재에게서 배신을 당한 선생님은,

남은 유산을 가지고 도쿄에 정착하기로 하고 고향을 등지게 된다.

아직 학교생활을 하는 터라, 기거할 곳을 찾던 선생님은 어느 하숙집에 들어가게 되는데

거기에는 미망인과 그녀의 딸이 있었다.

작은 아버지의 일로 사람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 심해진 선생님이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미망인의 딸을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특유의 조심성으로 인해 고백하지 못하고 미적대고 있을 뿐, 관계는 진전되지 않았다.

그 시기에, 선생님에게는 보살펴주고 싶은 친구 K가 있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주위의 반대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친구였지만,

그 때문에 몸이 약해지고, 마음도 아프다는 것을 선생님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친구를 자신의 하숙집으로 데려와 같이 살게 되는데,

어느 샌가 하숙집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도는 것을 느낀다.

설마 하며 가슴을 조리던 선생님에게 어느날 친구가 고백을 한다

미망인의 딸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왠지 선수를 빼앗긴 듯한 충격에 휩싸인 선생님은, 

그가 추구해오던 이상에 대해 열거하면서, 지금은 그럴때가 아니라는 식으로 그를 나무란다.

결국 친구는 이내 풀이 죽어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고,

그 사이, 사랑하는 여자를 빼앗길까 겁이 났던 선생님은

미망인에게 딸과 결혼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하고, 이내 허락을 받게 된다.

그 소식을 알게 된 친구는,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듯 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친구는 자살을 했다. 간단한 유서를 남기고.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선생님은 자신이 저지른 일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내막을 모르는 여러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쉽게 이야기할 뿐이다.

친구를 자살로 내몰았다고 느낀 선생님은 그후로 자신에게도 냉혹하게 대하게 된다.

피해자였지만, 가해자가 되었던 자신에 대해 관대할수가 없는 삶을 살아온 것이었다.

 



글을 읽으면서, 참 섬세하면서도 담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별한 미사여구가 없으면서도 작가의 의도가 정확히 파악이 된다.

특히 마음을 따라가는 그 여정이, 그 필력이 아주 훌륭하다.

설명하려 들지 않는데, 모든게 이해되는 그런 여정의 책이다.

인간이 살면서 겪는 여러가지 사건들은

그렇게 한 사람의 삶을 정의하게 된다.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그 안에서 교훈을 얻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 안에 갖혀 일생을 허비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위와 같은 스토리라면 과거로부터 벗어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선생님의 친구가 죽은게 결코 한가지 이유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워낙에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이었으니까.

친구의 배신이라는 점에서 충격을 받아 자살을 결행했는지는 몰라도

결코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어떤 사건을 받아들이던 간에,

사람은 자신의 상황에 맞춰 상황을 재단하기 마련이다.

평탄하게 인생을 살아 오던 사람이 

갑자기 맞이하게 된 인생의 변환점에서

피해자인줄만 알았던 자신이 그렇게 냉혹한 가해자가 될수도 있었다는 것에

스스로 충격을 받게 되는게 이 소설의 큰 줄거리이다.

어느 누구도 완벽할수도 없는 것이며, 상황에 따라 변해가는 게 인간이라고.

그 마음은 어쩔수 없는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잘못된 것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어쩔수 없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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