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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납골당에 다녀와서

by 글쓰는 백곰 2015. 4. 23.

엄마 유골이 있는 납골당에 다녀왔다.

거기에 엄마가 있다고 말하기도 애매하지만.

 

육신이 건강했던 엄마는 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키우지도 않았고, 선물 받은 적도 없었다. 관심 밖의 생물이었다.

그러다가 몸이 아파 시한부를 선고 받은 엄마는

갑자기 꽃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마지막 순간에는 그것들을 보며 울었다.

아직도 피어 있을 것만 같은 자신의 생명이 끝나가는 것이 서러워

혼자 울고 또 울었다고 했다.

그런 걸 생각하면 별로 내키진 않았지만,

빈손으로 엄마를 만나러 가기도 어색해서

분홍색 카네이션을 샀다. 작게 꽃사지로 만들어서.

5월 8일. 어버이 날. 엄마의 기일이기도 하다.

난 그날 오지 못할 것이다.

미리 카네이션 달아주는 거야, 납골당 유리에 꽃사지를 붙인다.

 

말로 제어가 되지 않는 아들을 유모차에 싣고서

직원에게 안치되어 있는 곳의 번호표를 받아오고,

항아리에 들어있는 엄마의 유골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딱 5분 정도가 한계다.

아이가 조용히 있을 수 있는 시간도,

내가 더 이상 감정에 동요하지 않을 시간도.

 

할 말이 없다. 거기서 주절주절 떠들 말도 없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미 마음속으로 다 해 버렸다.

거기서 껍데기만 남아있는 엄마의 흔적만 볼 뿐이다.

사실 납골당 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두고두고 슬픈 마음으로 며칠을 앓게 만드니까.

차라리 다른 곳에 뿌리자고도 해봤다. 엄마가 좋아하는 곳에.

그러나 오빠는 동의하지 않았고, 화를 내며 내게 그럴 권리가 없다 했다.

그래서 그냥 포기했다.

게다가 엄마의 유언이었다. 납골당 안치.

자신을 위해 제사는 지내지 말라면서도

자신을 위해 가끔씩은 찾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래서 엄마는 지금 납골당에 있다.

 

칸칸이 아파트 같은 곳, 로얄층에 자리 잡은 사진 속 엄마는

언제나처럼 아무말이 없고, 젊고, 아름답다.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 그 탈진 직전의 모습이 잊혀져가고

좋았을 시절, 그 때의 아름다운 사진의 모습으로 대체된다.

기쁜 일이다.

나는 더 이상 그 마지막 모습 때문에 울 일은 없는 듯 하다.

 

엄마는 나에게 별로 공정한 애정을 주진 않았다.

끝까지 아들만을 사랑하고, 아들만을 기다렸다.

옆에 있고 지켜 주는 것은 나였지만, 애정의 몫은 다른 곳에 있었다.

게다가 엄마의 무신경으로 인해 나는 억의 체납액을 상속 받았고

그것은 두고두고 내 인생을 가로 막고 우울하게 했다.

내게는 많은 숙제와 시련을 안겨 주고선

갑자기 암으로 떠나 버렸다. 아무 것도 해결해 주지 않은 채로.

그래서 엄마가 가고 난 후에도 난 결코 아무 것도 정리되지 않았다.

엄마를 사랑했지만, 원망했다.

어느 한쪽에 감정이 더 치우쳐야 하는데 그게 제대로 이뤄지질 않았다.

돌아가시고 나서 우울증에 시달릴 때, 정신과 의사가 그랬다.

엄마라고 해서 모두 다 완벽하고, 세상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그러자 조금 이해가 되었다. 조금 용서가 되었고.

 

세월이 흘러 나는 엄마 없이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5년 후. 나의 체납이 소멸되었다.

그리고 나서 처음으로 가는 납골당.

거기로 가는 차 안에서 생각했다.

 

이제 그리워만 할께. 미워해서 미안해.

이제 사랑한 추억만 되새길께. 원망하지 않겠다 약속해.

좀 더 빨리 마음을 추스리지 못해 미안해.

더 이상 불평하지 않을께. 그냥 엄마여서 괜찮아.

살아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지금도 괜찮아.

 

5년이 지나서야 제대로 떠나 보낸 것 같다.

이제 아프지 않은 듯 하다.

가끔 흐드러지게 핀 꽃을 보면 기억이 나겠지만,

그 때문에 며칠동안 울음을 참진 않을 듯하다.

게다가 난 이제 엄마니까.

엄마라는 직업이, 여러 상념에 사로 잡힐 만큼 한가로운 것이 아니라는게

어쩔 땐 정말 다행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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