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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채식주의자 - 한강

by 글쓰는 백곰 2018. 1. 18.

채식주의자 - 그녀의 남편


아내는 온순하고 평범하기만 한 사람이었다.

특별한 애정을 느끼진 않았지만

배우자로서 무난할 것 같아 시작한 결혼생활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아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채식주의자가 된 것이다.

아내의 채식에 대한 강박은 나날이 심해졌고

육식하는 나를 밀쳐내거나

하루종일 알아 들을 수 없는 꿈 타령을 하며

자기 안으로 굽어지던 아내를 어찌해 볼 방법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사장부부 동반 모임에서 보인 아내의 기괴한 행동은

남편으로써 용인할수 있는 한계를 벗어났다.

결국 처가에 이 사실을 알리게 되었고,

그렇게 가족 모두가 모여 식사를 하게 되었다.

아내의 앙상한 몸이 안쓰럽기만 한 가족들은

끊임없이 육식을 권했지만, 아내는 완강히 거부했다.

결국 장인이 아내를 포박해 고기를 먹이려고 했으나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괴력으로 벗어난 아내는,

결국 칼을 들어 자신의 손목을 긋고 말았다.



몽고반점 - 그녀의 형부


처제가 자해를 했던 그 순간,

재빨리 병원으로 업고 간 것은 나였다.

언제나 백지같이,

꿈꾸는 눈을 가진 그녀를 처음 본 순간부터,

나는 그녀에게 매혹되었다.

그러나 가족으로 엮어진 이런 관계에서는

어떤 내색도 하면 안되는 것이었다.

처제의 결혼생활이 엉망으로 끝나버리고

그렇게 병적인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는 순간,

그동안 정체되어 있던 내 작품 세계에 대한 영감이 나를 사로잡아 버렸다.

비디오 아트를 하는 나는 그동안 별다른 작품 활동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생활력 강한 아내 덕분에 생활 자체는 어려움이 없었다.

아내는 엇나가버린 처제의 정신세계를 안타까워했지만

나는 그 곳에서 내 뮤즈가 선사하는 영감을 찾아냈으며

조만간 이를 꼭 실현시키리라 결심했다.

이를 위해 작업실도 빌리고, 처제의 승락도 얻어냈다.

전라가 된 처제의 몸은 하나의 꽃이었다.

몇년 동안 갈증으로만 머물렀던 예술을 발현시켜 주는 하나의 꽃.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다른 꽃,

육체와 육체가 결합되어 빚어지는 그 접점의 예술이 필요했다.

나는 후배를 설득하여 작업을 시작했지만,

후배는 계속되는 나의 요구를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뛰쳐나가고 말았다.

작업을 완성해야 한다…

강박에 사로잡힌 나는

내 몸에 꽃을 그리고

처제의 집에서 마지막 예술을 완성시켰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알몸으로 잠이 들었던 나와 처제를 발견한 것은

나의 아내였다.



나무 불꽃 - 그녀의 언니


동생과 남편의 그런 일을 목격한지 오랜시간이 지났다.

남편과는 이혼했고, 아이는 내가 키우고 있다.

온전치 않은 동생을 보살피는 것도 내 몫이 되었다.

처제와 형부가 그런 일을 했다는 사실은

부모조차 딸을 거부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맡아야 할 짐이 되어버린 나의 동생.

어릴 적부터 순하고 착하던 동생이 그렇게 된 것은 죄가 없다.

성치 않은 정신의 동생을 이용한 남편이 잘못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나역시도 보살핌에 한계가 있어서,

정신병원에 입원한 동생을 가끔 면회가는 것 밖에는 다른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만난 동생은 어느덧 가망없는 신체가  되어 있었다.

어떤 영양도 취하려 하지 않았고, 다만 죽음을 맞이하고자 했다.

이제 자신이 동물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어느 순간부터 잘못된 것일까.

죽어가는 동생을 보며 생각한다.

나 역시도 이 삶을 포기하고 싶다고.

남들이 말하는 성실하고도 꾸준했던 삶,

그렇게 살아왔지만 나 역시도 이젠 지쳤노라고.

손을 놓지 못하는 것은 어디선가 아득히 들리는 아이의 목소리 때문이지,

사람이 죽어지는 게 전혀 이상한 일만은 아니라고.



이 소설은 3편의 단편으로 만들어져 있고

각자의 시선으로 한 여자를 탐구하는 내용이다.  

처음 이 소설을 접한 것은

‘몽고반점’이 이상문학상에 선정되었을 때다.

3연작이 아닌 단편으로 봤을 때는

(실제로도 이 단편들은 연작형태치고는 큰 텀이 존재한다)

다소 패륜적인 내용 자체가 충격적이었는데,

이렇게 앞뒤를 다 붙여 읽고 보니

작가의 의도가 어떤것인지 이해하기 쉬워졌다.

인간이 어떤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어

그 망상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몰락의 과정,

그 결과,

그 모습을 지켜보는 세 사람의 각자 다른 시선.

남편이라는 방관자,

형부라는 이용자,

언니라는 애정자.

셋 모두 그녀를 다시 삶속으로 끌어들일 수는 없었다.

이 소설은 내용에 주목해야 하는 소설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이 침잠해 가는 언어의 미적 표현,

그  거칠면서도 병적이며, 매혹적이도 한 서사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보는 느낌을 받았다.

다소 불편하고 기이한 시각으로 시작되는 설정 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파고듦에 있어서의 그 집요함,

그리고 그를 지켜보는 타인들의 건조함이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술이라는 것이 갖는 어떤 위험한 경계,

그 아름다움의 퇴폐미와 부도덕성에 대해

사람이 얼마나 관대할수 있는가,

예술이란 정녕 범상치 않은 부분을 건드려야 그 천재성이 발현되는 것인지,

대중이 예술에서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충격 그 자체는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이 파격적인 책이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도 무척 흥미로운 일이었다.

한국 독자들의 문학에 대한 열린 시각을 알게되었다랄까.

특별함이라는 것은 그렇게 사람을 매혹시키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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