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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스토너 - 존 윌리엄스

by 글쓰는 백곰 2018. 1. 20.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스토너가 대학에 들어간 것은 그야말로 우연이었다.

농업 학위를 따기 위해 대학공부를 시작했다가 영문학에 매료된 것은 필연이었다.

그동안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세계.

생존에 가까운 삶을 살아왔던 스토너에게

문학이란 환상과 선망의 대상이었다.

농사일과 공부를 병행하던 그는 마침내 영문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졸업과 동시에 모교에서 교직 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그 시기 미국에서는 전쟁붐이 일어났고,

스토너는 그 때문에 친한 친구 하나를 잃었다.

그러나 다른 친구 핀치는 건재히 살아 돌아와 모교에서 교직원 생활을 하게 된다.

핀치는 그가 죽을 때까지 함께 했던 유일한 친구였다.

스토너는 핀치와 함께 어느 파티에 참석했다가 이디스를 보게 되었다.

첫눈에 반한 스토너는 그녀에게 바로 청혼하였으며,

그들은 마치 쫓기듯 결혼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디스와 스토너, 둘은 서로를 잘 몰랐다.

순간의 이끌림에 스토너가 손을 내밀었다면,

이디스는 그를 사랑해서가 아닌

지루한 일상을 피하는 탈출구로 그를 이용했을 뿐이다.

애정이 없는 결혼생활,

무엇이든 제멋대로 행동하는 이디스는

순간순간 열중할 무언가를 찾아헤맸고

그것들은 몇개월, 혹은 몇년동안 이어지기도 했지만

그 열정의 목록에 스토너는 없었다.

아내의 변덕으로 얻게 된 딸 그레이스,

스토너는 그 아이를 사랑했고

두 사람만의 공기를 행복해했다.

그러나 이디스가 갑자기 엄마 역할을 하겠다며

아이를 옭아매기 시작하자 결국 딸과도 멀어지게 되었다.

실패한 가정 생활.

그것을 위안할 수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문학에 대한 열정과

학생들을 향한 멘토로써 기능하는 자신의 위치밖에 없었다.

종신교수로서 명망을 얻기도 했으나,

그의 완고하고 강직한 성품은

누군가에게는 애정의 대상이,

누군가에게는 증오의 대상이 되게 했다.

동료교수인 로맥스는 자신의 애제자가 스토너로 인해 대학원 심사에서 떨어지게 되자

그를 미워하기 시작한다.

결국 로맥스는 자신의 권력을 사용해 제자를 입학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스토너를 향한 미움을 키워갔다.

어느날, 스토너는 세미나를 진행하다가

청강생이었던 캐서린의 논문발표에 매혹되어

그녀를 계속 주시하게 되었다.

그 학구적인 애정은 점차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번져갔고,

두 사람은 마음을 같이 하게 된다.

그렇게 은밀하고도 따뜻한 시절이 계속되었다.

캐서린은 스토너의 인생의 짝이었다.

좋아하는 것들, 바라보는 시선들, 그 모두가 일치했고,

스토너는 그녀의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그러나 이 관계를 눈치챈 로맥스의 협박으로 인해 둘은 헤어져야 했다.

서로를 위해 이별을 택한 두 사람은 헤어짐마저 온순하고 평화로웠다.

그 밖에도 로맥스의 치졸한 복수는 내내 이어졌다.

학과장이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스토너에게 어울리지 않는 아주 기본적인 수업만 할당하고,

시간표 역시 붕 떠있는 경우가 많았다.

스토너는 묵묵히 그 시간을 견디다가 어느 날 작은 반전을 꾀하게 된다.

그는 기초반 학생들에게 할당된 교재와 커리큘럼을 버리라고 하며, 고학년의 전문 수업을 이어간다.

이에 학생들의 항의가 이어졌고,

이는 학과장인 로맥스의 책임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스토너의 고집을 끝내 꺾을 수 없었다.

결국 스토너는 다시 자신의 전문수업을 맡게 된다. 그의 복수가 성공한 것이다.

무료하게 하루하루를 이어가던 어느 날,

스토너는 딸 그레이스가 임신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아직 10대인 어린 딸이,

아내에게 격리되어 마음을 주고 받을수 없었던 애잔한 자신의 딸이.

하지만 이디스는 오히려 신이 난 듯 그레이스의 결혼을 추진했고,

아이 역시 그 과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레이스는 결혼과 동시에 집을 떠나버리고,

몇개월 지나지 않아 파병갔던 남편이 사망했다는 비보를 듣는다.

결국 그레이스는 시댁에 얹혀 살며 아이를 키우며 삶을 이어갔다.

자신을 옭아매는 엄마에게서 벗어나고자 택한 결혼,

그러나 해방구로 택한 결혼 역시 좋은 방법이 아니었던 것이다.

매일매일 하루를 잊게 해줄 만큼의 술을 마시며 그레이스는 늙어갔다.

스토너는 딸이 알콜중독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알고 있다해도 어쩔수 없음에 마음이 아팠다.

시간이 흘러 그는 이제 은퇴가 이상하지 않을 나이가 되었다.

평소 스토너를 싫어했던 로맥스는 학장까지 대동하여 그의 은퇴를 종용했다.

그러나 스토너는 종신교수였고, 무엇보다 은퇴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지루한 싸움이 오고 가던 어느 날, 그는 갑자기 심한 복통에 시달린다.

암이었다.

의사는 긍정적인 답을 주고자 했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죽음이 가까이 다가왔음을 감지했다.

이제 어쩔수 없이 퇴직을 결정해야 했다.

40년 동안 이어온 교직 생활.

그를 기념하는 만찬이 열렸으나, 스토너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간단한 소감만을 건넸을 뿐.

로맥스와도 말을 섞지 않았다.

그리고 수술이 진행되었고, 그는 나아지지 않았다.

이제 침대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그는 조용히 자신의 마지막을 관찰해보고 있다.

자신이 사랑했었던 학생들,

가르치고자 했던 자신의 열정들,

그리고 전쟁에 죽어버린 친구,

지금은 망가져 버린 인형같은 딸,

그리고 캐서린.

그는 이제 마지막 기운을 내어 자신이 쓴 책으로 손을 뻗는다.

내 것이면서 내 것이 아니었던 그 책.

서서히 페이지를 넘기던 그는

그제서야 안심이 된듯, 서서히 눈을 감았다.




스토너는 한사람의 인생을,

자신이란 존재를 인식한 순간부터

그 생명이 끝나갈 때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한사람의 커리어, 꿈, 열정

그러나 결코 인간적인 행복을 누릴 수 없었던 삶.

어쩌다 행복한 순간이 간혹 찾아오기도 했지만

삶은 그의 기쁨을 빼앗는데 혈안이 된 듯, 무참히 짓밟아버렸다.

그는 문학에 대한 열정 빼고는 모두 서툰 사람이었다.

무엇이든 시작을 할 수 있었지만,

그것을 유지하는 것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특히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무심할 수 밖에 없었는데

삶이 그를 그렇게 몰아쳤기 때문이다.

원리원칙과 고지식한 생각에 사로잡힌 스토너는

그 나름대로 최선의 삶을 살았다.

매순간 자신의 에너지를 최대한 발산하며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그가 바라는 단순한 결과,

기대했던 성과를 주는 것은 오직 문학뿐이었다.

그 안에서는 그는 모든 것이 가능한 사람이었다.

누군가는 그 삶이 실패했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성공했다고도 할지 모르겠으나,

글쎄. 그렇게 극단적으로 단정지을수 있는 삶이 존재는 하는 것인가.

스토너를 읽으며 인생을 이어가는 외로움을 엿보았다.

누구에게도 나눌수 없었던 삶의 무게를

끝까지 홀로 지고 가야 하는 자의 외로움.

...

크게 내세울 것 없어 보이는 그 삶이라고 해서

박수를 받지 못할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