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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by 글쓰는 백곰 2018. 2. 26.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20살이 된 다자키 쓰쿠루,

그는 죽음에 대한 충동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가장 소중했던 고향 친구 모두가

자신에게 절교를 선언한 것이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인생에서 그렇게 완벽했던 우정은 없으리라 믿었던

4명의 친구들이었다.

그런 그들의 절교 선언은

세상에서 거부 당한 것 이상의 절망을 안겨주었으며

그로 인해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이라 그는 생각했다.

그 상황에서 떠올릴 수 있는 해결책이라고는

죽음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 자체가 주는 힘은 강력한 것이어서

6개월이 지나자 그는 가까스로 자신의 마음을 추스릴 수 있었고,

다시 일상 속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또한 새로운 친구 하이다를 사귀게 되었고,

다시 정서적 안정을 찾아가는 듯 했다.

그러나 하이다 역시 어느 순간 갑자기

그의 인생에서 사라져 버렸다. 흔적도 없이.

쓰쿠루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개성도, 자신만의 색채도 없는

자신의 존재 탓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세월이 흘러 30대 중반이 되어버린 쓰쿠루는

그저 평범한 사람처럼 살아가는 듯 보였다.

그동안 몇번의 이성교제도 있었고,

호감이 가는 사람들도 몇 만나 보았지만

그 관계는 언제나 지속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점에 대해 크게 의아해하지 않았다.

20살의 상처입은 쓰쿠루는 여전히 그의 마음속에서 맴돌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쓰쿠루는 사라를 알게 된다.

만남을 거듭할수록 그녀에게 이끌리는 자신이 의아할 정도로

그녀는 특별한 여자였다.

그러나 사라는 자신이 그에게 다가갈 수 없는 어떤 벽이 존재한다며,

오래 전 쓰쿠루를 거부했던 친구들을 만나 보기를 권한다.

관계의 진전을 막고 있는 마음으로써 그 기억이 주요하다며

쓰쿠루에게 그들을 만나볼 것을 권유했다.

처음엔 내키지 않았던 쓰쿠루였지만,

이제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만한 시간이 흘렀고

자신에게 문제가 남아있다는 것 역시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만나기로 결심한다.

똑똑하고 자존심 강하던 아카,

외향적이며 활달했던 아오,

섬세하고 예술적이던 시로,

유쾌하고 재미있었던 구로.

첫번째로 만난 친구 아오는

쓰쿠루에게 절교를 선언했던 이유를 알려주었다.

쓰쿠루가 자신을 강간했다고 시로가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친구들 그룹에서 쓰쿠루를 제외시켜야 한다고

시로 본인이 격정적이게 이야기했기에,

그 의견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두번째로 만난 친구 아카 역시 그런 이유였다고 한다.

물론 그 두 친구들은 쓰쿠루가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 당시는 어쩔 도리가 없었노라고 말했다.

오히려 세월이 흐른 지금은 아무런 감정의 앙금도 없노라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쓰쿠루의 지난 고통의 시간들이 치유되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소문의 근원을 시로를 만나야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6년 전 살해되었다.

범인이 모르는 죽음을 맞이한 그녀를 이해할 방법은

시로의 단짝 친구였던 구로를 만나는 것 뿐이었다.

지금은 핀란드에서 살고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된 그는

구로에게 줄 선물을 사러 가던 길에서

사라가 낯선 남자와 다정히 웃으며 걷는 것을 목격한다.

사라는 그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고,

쓰쿠루는 복잡한 마음을 안은 채  핀란드로 떠나게 된다.

그렇게 만나게 된 두 사람.

쓰쿠루가 시로를 강간하지 않았다는 것은

구로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원체 신경이 예민하고 정신 상태가 불안한 시로가

강간한 사람으로 쓰쿠루를 지목한 것은

어떤 이유인지 알수 없었으나

누군가에게 강간당한 것은 확실한 사실이었으며 유산까지 했다고 한다.

그 후 시로의 신경은 나날이 쇠약해졌으며,

우선은 그런 그녀를 보호하는게 가장 급했던 구로는

어쩔 수 없이 그녀의 편에 서서 쓰쿠루를 쳐내고 말았던 것이다.

또한 그 시절, 쓰쿠루를 짝사랑하고 있던 구로는

그에게 거절당할 것이 두려워 끝내 고백하지 못했고,

시로의 거짓말을 눈치챘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멀어지기 위해 절교선언을 하게 된 것이었다며

눈물을 흘리며 쓰쿠루에게 용서를 구한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것이 어쩌면

개성도, 색채도 없는 자신의 문제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자 구로는 그가 얼마나 근사하고 좋은 사람이었는지 모른다며

어떤 여러움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는 강인한 사람이란

그런 확신이 있었기에 그에게 그런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었노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쓰쿠루와 구로는 그렇게 마음의 화해를 하게 된다.

일본으로 돌아온 쓰쿠루는 이제 사라에 대한 감정을 더이상 유예할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녀에게 마음의 고백을 하며, 함께 있어 달라 하지만

사라는 다만 3일의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만 한다.

그러나 그는 그 시간들을 견딜수 없다.

전화를 걸고 또 걸고…

그녀에게 남자가 있든 없든 상관없다.

그는 지금 그녀를 원하고 있을 뿐이다.



역시 하루키라는 생각이 드는 소설이었다.

흥미롭게 과거의 조각을 맞춰가는 과정이 단연 훌륭했다.

과거에서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는 관계의 단절,

그러나 더 큰 고통을 맛보지 않기 위해 과거에서 멈춰버린 그는

계속 마음의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되었다.

그 불행의 원인을 결국 자신의 존재 자체로 생각하며,

쉽게 포기되어지는 관계들 속에 부유하듯 지냈다.

아무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간이 흘러버렸지만

그렇다고 그의 감정이 죽어버린 것도 아니었다.


왜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두고두고 인생을 갉아먹는 것일까?

다들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있지만

사실 그 상처를 피해 둘러둘러 도망다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이가 들면, 그때의 미성숙이 모두 이해되는 것일까.

그 땐 그럴 수 밖에 없었어 라는 대답을 들을 때의 허탈함이라니.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인생의 어느 순간이 너무도 완벽했다는 것,

그 순간이 너무 황홀했다는 것은

그 존재만으로도 인생의 독이 되기 쉽다.

모든 감정엔 생로병사가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상처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다친 순간보다는 흐려지지만, 그 범위는 더욱 확대될 뿐이다.

큰 어려움 없이 지냈던 주인공이

친구들의 절교로 자신을 비하하며 산 긴 세월을 생각해보라.

이래서 어릴 적부터 상처로 다져진 인생이

여러모로 고단은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오히려 단단해지는 것일까.

하루키 특유의 섬세한 문체, 감정을 따라가는 여정.

그는 여전히 건재하고, 여전히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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