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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나를 보내지 마 - 가즈오 이시구로

by 글쓰는 백곰 2018. 4. 4.

1990년대 후반 영국.

캐시는 11년 이상 간병사로 살아가고 있다.

그녀가 간병사가 된 것은 그녀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녀는 기증자로 태어났고,

기증자가 되기 전엔 간병사로 살아야했다.

이제 8개월 후면 간병사를 그만두게 될 것이다.

그동안 자신의 인생을 찬찬히 돌아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캐시는 생각한다.

캐시는 헤일셤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녀가 인식하는 삶의 시작이란 그곳에서의 기숙생활이라고 할수 있었다.

부모가 존재하지 않는, 캐시와 비슷한 상황이 아이들이 키워지는 곳이었다.

캐시는 헤일셤에서 청소년기까지 지내며,

다양한 예술활동과 운동을 할수 있는, 이상적인 학교생활을 했다.

거기서 루스를 만나게 되었고, 친구가 되었다.

루스는 다소 허망하고 이상적인 거짓말을 종종 하곤 했다.

그것이 진실이 아님을 알고 있는 캐시였지만,

눈 감아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꿈을 쫓고 이상을 바라는 삶,

그것이 루스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몇번의 성격 충돌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우정을 지속해갔다.

그리고 캐시는 토미를 알게 되었다.

유난히 서툴고 어리숙한 행동을 하는 그는 언제나 눈에 띄는 존재였다.

그로 인해 친구들에게서 따돌림을 당하는 토미가 안스러웠던 캐시는

토미에게 몇가지 조언을 건네며 친구가 되어준다.

헤일셤은 가끔씩 학생들의 작품 전시회를 열었다.

별 것 아니지만 학생들은 자신의 창작물을 만들어 전시회를 열었고,

학생들끼리 마음에 드는 작품을 ‘수집품'으로 간직하기도 했다.

학생들의 작품 중 특별한 것들은 ‘마담'이 가져간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마담은 학교에 가끔씩 출몰하는, 학교의 실권자처럼 보이는 미스테리 인물이었다.

또한 학교에서는 가끔씩 판매회가 열렸는데, 학생들은 그것을 무척 좋아했다.

바깥 세상에서 온 특별한 물건과 옷, 장난감들을 구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캐시는 거기에서 주디 브릿지워터의 카세트 테이프를 구입했다.

그중 ‘Never Let Me Go’ 라는 노래를 좋아했다.

캐시는 그 노래의 구절 “오, 베이비, 베이비, 네버 렛 미고…”를 들으며

누군가가 자신의 아기를 빼앗아 가는 슬픔을 표현한게 아닐까 싶었다.

헤일셤의 아이들은 아이를 가질수 없는 몸으로 태어났다.

그렇기에 캐시는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캐시는 혼자 있을 때 그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베개를 끌어안고 느릿하게 춤을 추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오, 베이비, 베이비, 네버 렛 미고…”

혼자만의 시간이라 믿었는데, 그 모습을 목격한 사람이 있었다.

마담이 캐시를 지켜보고 있던 것이다.

당황한 캐시는 얼어붙고 말았다.

무언가 혼나지 않을까 걱정하던 캐시의 눈에,

울고 있는 마담의 얼굴이 보였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캐시와 눈이 마주친 마담은 서둘러 자리를 떠나버렸다.


늘 어리숙한 행동으로 친구들에게 비웃음을 샀던 토미가 변해있었다.

친구들의 비아냥을 무시하며,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예전의 토미였다면 발을 구르고 소리를 지르며 혼자 분개했을텐데.

그의 변화에는 루시 선생님의 조언이 있었다.

너무 열심히 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창조적으로 되려고 애쓰지 않으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그렇게 말하던 루시 선생님의 모습에서 분노를 발견했지만,

정말 그녀의 말대로 했더니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토미는 캐시에게 말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토미였지만,

다소 특이한 그림을 비웃는 친구들 때문에 화가 났으며

루시 선생님은 그런 토미에게 조언을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후로 토미는 그림 그리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전시회에 낼 작품 한번 낸적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 토미와 루스는 커플이 되었고,

청소년기를 지나자 학생들은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간병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거치기 위해서였다.

토미와 루스, 캐시는 같은 코티지로 배정받으며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을 거쳤다.

코티지에는 선임들이 있었다.

그들 역시 기증자로, 헤일셤이 아닌 다른 곳에서 왔다.

어느 날, 선임 중 한 사람이 루스와 같은 사람을 도시에서 보았다며

그 사람이 루스의 근원자일거라고 했다.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그 사람은,

루스가 바라는 직업(오피스에서 일하는)과도 일치했다.

거기에서 일말의 희망을 본 루스는 그 사람을 찾아가기로 한다.

선임자들과 루스, 캐시, 토미는 함께.

그렇게 근원자를 만나러 가던 길,

루스는 또 다시 허황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자신도 오피스에서 일하는 사람이 될 지도 모르며,

기증자들끼리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이 증명되면

기증자가 되는 것에서 유예기간이 주어진다는 말을 들었다고.

선임들의 추정으로 시작된 그 이야기는

어느새 루스에겐 하나의 사실이 되어 있었다.

캐시와 토미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고,

그렇기에 루스가 들뜨는 것이 걱정스러웠다.

루스의 근원자로 추정되는 사람을 가까이서 목격한 일행은

그 사람이 루스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만 확인했다.

이에 허탈해진 루스는 선임자들과 시내 구경을 가고,

토미와 캐시는 길거리에 남겨진다.

그때 문득 토미가 캐시에게 그 카세트 테잎을 구하러 가자고 제안한다.

결국 캐시와 토미는 낡은 가게에서 테잎을 구하게 된다.

캐시는 너무 기쁘고 행복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안다면 토미와 커플인 루스가 불편한게 뻔했다.

그래서 결국 테잎은 몰래 숨겨놓았다.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루스는 그 테이프를 발견하게 되고

캐시에게 화를 내면서 상처를 주는 말을 하게 된다.

토미는 문란한 여자를 좋아하지 않으며

(캐시는 가끔씩 포르노 잡지를 열심히 보곤 했다)

그냥 소중한 친구로만 캐시를 생각한다고.

이에 화가 난 캐시는, 헤일셤에서의 일들을 말하며

왜 지난 날들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처럼 구냐고 물었다.

캐시는 새로운 희망에 들떠 과거의 일들을 없었던 듯 부정하고

가식적으로 행동을 하는 루스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루스는 캐시의 말을 무시해버렸다.

캐시는 이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바로 코티지를 떠나 간병사의 생활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렇게 간병사가 된 캐시는 좋은 평판으로 일을 계속해 갔다.

그리고 자신이 돌보는 기증자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도 생겼다.

어쩌다 만난 헤일셤의 동급생이었던 간병사가

루스가 기증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생각보다 건강이 좋지 않다고 말하며,

그녀를 간병하는 것은 어떻겠냐는 제안을 한다.

캐시는 잠시 망설였지만, 그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고

그렇게 루스와 재회를 하게 된다.

처음에는 다소 반가웠지만, 둘 사이의 거리감은 그대로였다.

몸이 약해진 루스는, 문득 토미를 만나보고 싶다고 한다.

토미 역시 기증자가 되어 있었다.

결국 세사람은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루스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낸다.

토미와 캐시야말로 좋은 커플이 될수 있었는데,

자신이 거기에 끼어들어 미안했다고.

그리고 예전에 말한 것처럼 두 사람이 진정한 사랑인 것을 증명할수만 있다면

유예기간이 주어질테니 마담에게 찾아가보라면서

토미에게 마담의 주소가 적힌 쪽지를 건넸다.

또한 캐시에게 방탕하다고 이야기했던 것에 대해 사과하며

사실 네가 보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있었다며,

가끔씩 성적충동이 들던 캐시가 자신의 근원자가 창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포르노잡지의 여자얼굴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던 것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땐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자신도 가끔씩 성적충동이 몰아칠 때가 있었노라고 고백한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루스가 죽었다.

루스는 죽기 전, 캐시가 토미를 간병했으면 좋겠다고 권했다.

결국 캐시는 토미의 간병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토미는 기증자로서 건강한 편에 속했지만,

어느덧 4번째 기증을 앞두고 있었다.

그것은 언제 그의 삶이 끝날지 모른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함께 있는 시간동안 그들의 사랑을 확인하며

마담을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토미는 어릴 적 자신들이 만들어낸 작품들이

클론으로 태어난 자신들의 특별한 인간성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토미는 그 때 제출한 창작물이 없었기 때문에

그동안 자기가 몰래 그려온 그림들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렇게 캐시와 토미는 마담을 만나게 된다.

마담은 캐시를 기억하고 있었다. ‘네버렛미고'를 부르며 노래하던 캐시를.

그리고 거기에서 당시 헤일셤의 교장이었던 에밀리를 만나게 된다.

에밀리는 마담과 함께 헤일셤을 운영하는 주축이었다.

클론들이 살아있는 동안 인간다운 삶을 영유할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교육시키고 함께 했지만,

결국 클론으로 삶을 마감해야하는 현실에 한계를 느꼈으며

캐시와 토미가 바라는 삶의 유예는 자신들의 권한 밖에 있다고 말한다.

결국 캐시와 토미는 자신들의 인간성의 존재 여부을 떠나

처음부터 정해진 인생의 길로 갈 수 밖에 없었다.

토미는 캐시가 자신의 마지막을 보지 않길 원했다.

결국 캐시는 토미의 바램대로 이별을 택했고, 토미는 세상을 떠났다.

이제 혼자 남겨진 캐시는 자신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클론으로 태어나 제한적인 삶을 살았지만

행복했던 그 시절, 헤일셤에서의 추억이 있어

다행이라고, 캐시는 생각한다.

어릴 적, 자신과 친구들이 잃어 버린 모든 것들이

노퍼크에 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토니가 죽은 후 캐시는 홀로 노퍼크로 향했고,

그 곳에서 잃어버린 시간들과, 사람들을 생각한다.

눈물이 흘러내지만, 캐시는 이내 아무렇지 않은 듯 돌아선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을 겨우 두 권 읽었지만,

나머지 책들을 읽지 않아도 이 소설이 최고일거라는 확신이 든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내용인가,

기증이니, 간병이니, 갈피를 못 잡았다.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이미 정해져있다지만) 처음부터 파악하기 힘들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몰입하게 되는 방법으로써 적절했다고 본다

소비되고 마는 재화로써의 존재이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삶이란 것이 존재하기에

우리의 유년기가 그러하듯 사소한 일들이 일상을 채워가고

그 시절을 온전히 살아가는 것에만 집중한다.

지극히 인간적이어서 더 아픈 그런 부분이다.

삶에 대한 무서운 질문과 회의는 그들의 성장이 끝나감과 동시에 드러나는데,

그 후반부로 갈수록 어찌나 슬퍼지던지.

운명을 유예할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 너무나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것에 매달려야 하는 삶에 대한 절박함이 느껴져 마음이 무거웠다.

인간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 내는 것들이

그 필요만 충족되면 끝이라는 식의 무책임함이 만들어내는

여러가지 비인간적인 문제들을

클론의 존재라는 극한의 존재를 통해 비판하고 있는 소설이다.

비판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완고한 형식을 취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섬세하고 아름다워 안타까움을 만들어내는,

간절한 호소를 담고 있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어떤 존재이던 간에

그 삶을 함부로 규정할 수 있는 절대적인 존재란 없다.

누가 더 귀한 삶을 살았고, 누가 더 선했는가의 잣대란 무의미하다.

그 자체만으로도 귀하고, 의미있는게 삶이기 때문에.

마음이 아프면서도,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좋은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