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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달콤한 노래 - 레일라 슬리마니

by 글쓰는 백곰 2018. 4. 24.

아기가 죽었다.

또한 아기의 누나는 숨을 거둘 것 같이 위태로운 상태다.

그리고 그 곳에 의식없는 한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두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했지만,

정작 자신이 죽는 일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집에 돌아와 이 모든 것을 본 아이들의 엄마는

쇼크상태로 울부짖을 수 밖에 없었다.


폴은 촉망받는 음악프로듀서였으며,

미리암은 변호사 자격증을 딴 수재였다.

그들은 서로 각자의 행복을 꿈꾸며,

결혼이란 것이 찬란한 미래를 방해할 수 없다 믿었다.

그러나 삶이란 그렇게 낙천적으로 돌아가질 않았다.

첫째 아이 밀라가 생기고, 조금 후에 둘째 아당이 태어났다.

미리암은 부모의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아이들 사이에서 다만 엄마로 사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폴에게 호소하고자 했지만,

양육의 몫은 처음부터 공평할수 없었다.

어느 날, 삶에 찌들어 있던 그녀는 법학과 동창이던 파스칼을 만난다.

그리고 같이 일해보자는 권유를 받자,

미리암은 망설이지 않고 보모를 구하기로 한다.

루이즈는 그렇게 그들 앞에 나타났다.

미리암은 수많은 걱정과 염려로 불안했지만,

아이들이 루이즈에게 호감을 보였으므로

모든 경계를 풀고 말았다.

루이즈는 아이들을 열심히 돌보는 것은 물론

요리와 청소까지 말끔히 해치우는 완벽한 피고용인이었다.

루이즈가 집을 보살피는 동안 미리암과 폴은

자신들의 커리어를 위하여 밤늦게까지 일하곤 했다.

퇴근시간이 늦어져도 루이즈는 불평 한번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부는 루이즈가 가족같이 느껴졌고,

그에 대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결국 폴과 미리암은 그리스의 휴가에 루이즈를 데려갔다.


루이즈는 그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

늘 보모로써 몸이 부서져라 일하기만 했던 그녀는

반짝이는 바다와 여러가지 신화들 속에 취해버렸고,

수영을 못하는 자신을 직접 코치해주는 폴의 자상함에 감동받았다.

이제 나는 이 가족의 일원이라는 믿음이 생겨났고,

그럴수록 더욱 그들을 실망시키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고, 모두가 행복한 듯 보였다.

루이즈는 아이들을 돌보며, 그 작은 세상에서 왕처럼 군림했다.

그녀가 살아온 삶은 여러모로 미리암의 삶과는 달랐다.

궁핍하고 어렵게 살아온 유년시절은

늘 절약하며 쉬지 않고 일하는 그녀로 만들어 놓았지만

그 미덕은 때로 지나칠 정도로 강박적이었다.

좋게만 보던 루이즈의 헛점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폴과 미리암은 마음이 불편해졌다.

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그저 눈을 감아버렸다.

시간은 점점 흘러, 아이들이 유치원에 갈수 있는 나이가 되어버렸고

이제 보모의 역할이 필요없어지는 시기가 다가오자

루이즈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녀에게는 새로운 아이가 더 필요했다.

그 가정에 계속 남을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아기가.

그래서 일부러 부부만 남을 수 있게 아이들과 외출을 하고,

어떻게든 미리암이 임신할수 있도록 계획을 세우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녀의 계획일 뿐,

당사자들은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또한 폴과 미리암은 그녀의 못미더운 점들을 발견하면서

(채무가 많다는 점, 버린 음식을 아이들에게 먹인다거나 하는)

그녀에게 거리를 두지 않았음을 후회하고

해고시키기로 마음먹는다.

루이즈는 그동안 허름했던 자신의 삶이

결코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믿음에 이르렀다.

마치 연기를 하는 것처럼, 더러운 아파트에서 지내는 것이며

자신의 온전한 안식처는 미리암의 집이고,

그곳에서의 자신만이 진짜라고 믿는 그런 지경에 이른 것이다.

다른 것은 상상할수도 없었다.

그러나 아이는 계속해서 자라나고,

이제 아이가 그리는 그림속에 자신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녀의 작은 세계가 끝나가고 있음을 느낀 그녀는

문득 떠오른 생각만이 유일한 선택임을 알수 있었다.

오후 4시, 아이들이 목욕하기엔 이른 시간,

그녀는 포도주를 마시며 찬장에서 칼을 꺼내고 아이들을 부른다.

“애들아, 이리와, 목욕할거야"



“나의 영원한 주제는 여성이다"

작가는 말했다.

과연 그에 맞는 이야기다.

여자가 가지는 가장 큰 불안에 대해,

그 뻔하고도 어려운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여성들은 과거와 달리 많은 지식과 능력을 겸비하게 되었으나

현실을 살아간다는 것은 과거와 크게 달라진게 없었다.

특히 엄마와 아이의 관계라는 것은

아빠가 가지는 관계와는 질적으로 다른 양상을 띤다.

강한 의무감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것은 때로 모성이라고 불리는데

그 때문에 여자들은 불안해지는 것이다.

자신을 방치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아이들에게 멀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뒤엉켜 끝없는 싸움을 해댄다.

어느 것에 무게추를 둘 것인가를 계속 갈등하며 사는 것이다.

아이들이 다 자란 후에야 무엇이 괜찮았는가를 짐작할 수 있을 뿐,

그 당시에는 현명한 선택인지 알지 못한다.

그만큼 여자의 삶에서 아이의 존재가 갖는 무게는

압도적이고도 절대적인 면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 그 짐을 나누게 하는 것에도 불신이 가득할 수 밖에 없다.

작가는 수많은 보모들이 그들만의 비밀이 있다고 주장한다.

보모가 아니래도, 돈을 버는 모두가 그들만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채무일수도 있겠고, 불법체류일수도 있겠고, 그 밖에 여러 다른.

그러나 아이를 낳은 부모가 자신의 부모자질을 확신 못하는 판국에

부모 대행자로서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의 자질을 따진다는 것도

무척 모순된 행동이기도 하다.

소설에서는 하층민인 루이자가

폴과 미리암이라는 주인에게 절대 순종하다가

그들의 선의를 맛본 후, 그전의 주종관계가 무너지면서

그들과 같은 일원이라고 착각하기 시작하여

몰락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처음부터 그들의 만남은 고용자와 피고용자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것의 경계를 엄격하게 지키는 것도 어려운 일이며,

사람 사이에 아무런 오해 없이 지내기도 불가능한 일이다.

한번도 가지지 못했던 휴가,

그것도 아름다운 바다와 황홀한 이야기가 넘치는 그리스에서

루이즈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언젠가, 자신들이 그들을 거부하게 되는 그런 순간을,

평생 그리스에서 살고 싶은 꿈을 꾸었을 것이다.

제대로 된 사랑도, 관심도 받지 못한 그녀에게

그들의 호감과 선의는 축복이자 저주였다.

문득 여자의 삶에 대해 생각해본다.

수동적으로 살수 밖에 없는 그런 여자들을.

누구나 자신의 처음을 선택할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처음이란 시작점만 공평하게 주어진다고 해도

나중에 인생의 마지막에서 억울할 일은 없을텐데.

좀더 많은 기회가, 아주 조심스럽지만 확실하게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