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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그들(them) - 조이스 캐롤 오츠

by 글쓰는 백곰 2018. 4. 11.


16살이 된 로레타의 일상은

모든 사춘기 소녀들의 하루가 그러하듯

지루함과 설렘이 교차하는 날들이었다.

그녀는 실직 상태의 아빠와 사춘기의 오빠 브룩과 함께 도시에서 살고 있었다.

브룩은 동네의 말썽쟁이였으며, 심지어 총을 가지고 다녔다.

로레타는 그런 오빠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각자 서로의 청춘을 탐닉하는 데 시간을 보내기도 빠듯했다.

로레타는 또래 남자아이 버니를 좋아했다.

어느 주말, 자신의 방에서 버니와 시간을 보내던 로레타는

다음날 새벽에 눈을 떴을 때 소스라치게 놀랐다.

버니가 총을 맞은 채 침대에 누워있던 것이다.

로레타는 당황한 나머지 길거리를 헤매게 되고,

거기서 자신의 또래이던 경찰관 하워드를 만나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둘은 그 날의 혼란속에서 관계를 갖게 된다.

결국 로레타는 하워드와 함께 결혼 생활을 하게 되며 세 아이를 낳았다.

버니의 아이인지, 하워드의 아이인지 모를 남자아이 줄스,

얌전하고 말없는 여자아이 모린,

언니와 달리 사고뭉치인 베티.

시골에서 시어머니와 살던 로레타는

도시의 흥청거림이 그리워 병이 날 지경이었다.

그리고 엄마로서의 역할을 빼앗고,

그녀에게 명령만 하는 시어머니가 견디기 힘들었다.

남편이 군복무 중이었지만, 로레는 망설임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디트로이트로 이사한다.

그렇게 무작정 도시로 오던 날,

돈이 떨어진 그녀는 거리로 나간다.

이윽고 낯선 남자에게 접근해 화대를 흥정했다.

그러나 그녀의 첫시도는 물거품이 되었는데,

상대방 남자가 경찰이었기 때문이었다.


로레타와 하워드는 죽은 부부관계였다.

남편 하워드는 부정을 저지른 대가로 경찰직을 빼앗겨 노동일을 해야했으며,

집에서는 아무 감정도 없는 사람처럼 늘어지기만 했다.

그런 가장에게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아이들도 알고 있었다.

그에 반해 줄스는 활기차고 호기심 넘치는 아이였다.

알수 없는 매력으로 반짝이던 아이.

사고를 만들어내는가 하면, 가족을 돌볼 줄도 아는 다정한 첫째였다.

그에 비해 모린은 조용하고 우울한 아이였다.

어머니의 짜증을 받아가면서도 살림을 보살피고 동생을 돌보았다.

주로 몽상을 하며, 선생님이 되고 싶은 꿈을 가졌으나,

로레타는 그런 미래를 허락하지 않았다.

하워드가 강철 파이프에 깔려죽게 되자,

로레타는 얼마 지나지 않아 펄롱과 재혼을 하게 된다.

줄스는 더욱 밖으로 나돌기 시작했으며,

모린은 새로 태어난 동생까지 떠맡게 된다.

술에 취한 새아버지를 데려오는 것, 갓난 아기를 돌보는 것,

엄마의 짜증을 받아내는 것등 모린은 나날이 지쳐갔다.

차라리 돈을 벌고 싶었지만, 로레타가 허락하지 않았다.

벗어나고 싶었던 모린은 학교 조퇴를 한 후 길거리로 나간다.

그렇게 낯선 남자를 만나게 되고,

어느덧 몸 파는 여자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서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돈이 모아져 집을 탈출할 계획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그것이 펄롱에게 들통이 나버리고,

집에 돌아온 모린은 그에게 무차별로 폭행당한다.

결국 로레타와 펄롱은 이혼했고,

모린은 그날 이후로 의식을 잃은 채로 몇년을 살아간다.

깨어있지만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먹기만 하는 존재로.

정신이 망가져 버린 것이다.

줄스는 그런 모린을 안타까워하며 계속 해서 생활비를 보낸다.

그러다가 한탕주의인 버나드를 만나 그의 운전기사를 된다.

겨우 이틀이던 그 찰나의 순간,

버나드의 조카인 네이딘을 알게 되고, 사랑의 열병에 빠져버린다.

버나드가 죽어 네이딘을 만날 일이 없게 되자,

줄스는 꽃배달 트럭을 몰고 네이딘을 찾아간다.

자신의 생활에 지루함을 느끼던 네이딘은

멕시코에서 새 삶을 살고 싶다며 줄스를 꼬드겨 집을 탈출한다.

그녀를 위해 갑작스러운 여행길에 떠나게 된 줄스는 무일푼이었다.

차를 훔치고, 강도질을 하며 네이딘의 무리한 요구를 다 들어주고자 했으나

여행 도중 갑자기 독감에 걸려 정신을 잃게 된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 네이딘은 없었다.

아픈 줄스를 감당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후 줄스는 여러 잡일들을 전전하며 살아갔다.

그러나 좀더 훌륭하고 나은 삶을 향한 동경은 더욱 강해졌다.

어느 날, 줄스는 삼촌의 제의를 받아 그의 조수 역할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며칠 되지 않았을 때,

줄스는 식당에서 네이딘과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

이미 유부녀가 된 네이딘이 먼저 줄스에게 다가와 연락처를 건넸고,

둘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며 재회하게 되었으나

줄스는 이상하게도 섬뜩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네이딘은 공허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줄스가 자신의 삶을 채워줄 유일한 사람이라며

그를 놓아주지 않고 계속 원했다.

어딘지 모르게 위험하고 아슬해 보이는 네이딘이지만

너무나 사랑했으므로 줄스는 그녀의 요구대로 따를수 밖에 없었다.

두 사람의 몸이 엉켜, 쾌락과 애정의 끝에 닿고자 노력했던 날,

어찌된 일인지 네이딘은 시간이 지날 수록 차가워지고 있었다.

그녀는 줄스가 자신의 공허를 줄 채워줄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누구든, 어떻게든, 자신을 채워줄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총으로 줄스를 쏘고, 자신도 쏘는 결론을 택한다.

모린은 1년 넘게 의식없이 지내다가, 어느 날 문득 정신이 깨어난다.

깨어나자마자 홀로 독립하게 되고,

타이피스트가 되어 야간대학도 다닌다.

그녀는 지금 새로운 삶, 새로운 사랑을 꿈꾼다.

과거로부터 되도록 멀리 떠나고 싶은 것이다.

모린은 야간대학 강사인 유부남 짐을 보며,

그 사람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믿는다.

모린과 짐은 서로의 현실에 환멸을 느낀데서 기인한

그런 사랑을 시작했고, 그렇게 결혼했다.

줄스는 그 총격 사건 이후,

죽진 않았지만 죽음보다 더한 삶을 살아갔다

그를 사랑하는 여자들이 있었지만, 그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걸어다니는 허상처럼, 모든 것이 무의미하고 허무했다.

그의 삶은 총을 맞았던 그날 함께 죽어간듯 했다.

모린은 짐의 아이를 임신한 지금이 가장 안전하고 보호받고 있다고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줄스를 보고 깜짝 놀란다.

과거로부터 완벽히 멀어졌다고 믿었는데, 오빠의 출현이라니.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는 모린을 보며

줄스는 가족에게도 결혼사실을 알리지 않은 모린이 서운할 뿐이다.

“그 사람들을 이제 만날 일이 없다”고 말하는 모린.

줄스가 묻는다.

“하지만 모린, 너도 ‘그 사람들' 중 하나가 아니야?”

그 어색한 공기도 잠시,

결국 두 사람은 서로의 길로 각자 헤어지고 만다.




1930~60년대의 미국인들의 삶을 조명한 소설이다.

작가의 제자였던 모린이 그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

어느정도는 사실적인 소설이라고도 할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미국인의 삶을 조명하는 소설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잘 포장되어 있는 듯한, TV 광고에나 나올 법한 그런 중상층의 삶 말고,

일그러지고 삐딱한 중하층의 삶 말이다.

이 전에 읽었던 것은 ‘힐빌리의 노래'였고,

그보다 좀더 앞선 시대 버전으로 ‘그들'이 있다고 보면 될듯 하다.

노동자계층에서 자란 아이들은

부모들에게서 정신적 지지를 받으며 자라기가 힘들고

(그들의 고단한 삶 자체에서 모든 에너지를 소진해서가 아닐까)

무언가 삶의 지혜를 배우기도 힘들다.

어떤 것이 도덕적이고, 어떤 것이 문제 없는 행동인지 모른 채

그냥 닥치는 대로 살아가는 것.

특히 로레타의 사춘기로부터 시작된 즉흥적인 삶은

자녀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각자의 꿈을 키워가는 줄스와 모린,

두사람은 좀더 좋은 세상을 위해 살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그 방법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경찰을 보면 이유없이 뛰어야 할만큼,

왠지 모르게 떳떳하지 못한 삶을 살아야 했던 두 사람은

각자 큰 상처를 하나씩 얻고 삶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이란 나라가 가지고 있는 거대함 속에서는

이렇게 미처 관리받지 못하거나 외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것은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 통로를 부모가 방해하는 것일수도 있고,

각자의 성격적 결함에서 유래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내가 그들과 같은 삶을 살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그들보다 우월하다고 할수도 없다.

나는 다만 그들보다 운이 좋았을 뿐이며,

그들은 다만 운이 없었을 뿐이다.

과거의 것들을 지고 살아가려는 줄스,

과거의 것들을 버리고 살아가려는 모린,

두 사람 다 어느것이 맞다고는 할수 없다.

나는 그저,

언제나 캘리포니아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던 줄스가

계속 꿈꾸며 살수 있길 바랄 뿐이고,

새로운 가정속에서 새로운 삶을 창조하려는 모린이

이제는 엄마로서 자식을 뒷받침해주는 존재가 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