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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그 곳

LA와의 날카로운 추억

by 글쓰는 백곰 2018. 4. 25.

지난 주, 아이의 봄방학을 맞아 LA에 다녀왔다.

목적지는 디즈니랜드였고, 2박3일의 여행이었다.

 

각 도시마다 풍기는 분위기라는 것이 있다.

한국에 살 때만 하더라도 그런 느낌을 잘 몰랐는데

미국에 오고 보니 워낙 땅이 넓어서인가,

각각의 다름이 큼직하게 다가온다.

 

LA는 한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이고,

대부분의 한국인이 찾는 관광지이지만

솔직히 그렇게 매력적인 도시인가 하는데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 소견이다.

사람마다 도시에 대한 추억이 다르고, 느낌이 다르니까.

다만 나의 경우가 이렇다는 것이다.

이번이 LA의 처음은 아니었다.

텍사스에서 이사 오면서 하루 정도 머물렀던 곳이니까.

그 때도 그다지 좋은 느낌은 아니었는데,

이번 여행으로 그 원인을 정확히 알게 된듯 하다.

 

 

우선… 가장 먼저 지적할 것은

심각한 교통체증과 거친 운전자들이다.

사람이 많이 사니 차가 많은 건 그렇다쳐도

운전매너가 어찌나 사나운지.

여유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나 어찌나 스피드광들인지.

몇 번이고 등골이 서늘해지는 순간을 보내고

어쩌다가 바라본 하늘은

왜 또 그렇게 누렇게 뜬 얼굴인지.

갑갑하다, 라는 느낌이 들면서도

도시가 그렇지 뭐, 수긍이 되면서도

여기 안살아 다행이야, 안심도 되었다가.

 

첫 날엔 헐리우드 거리를 가보기로 했다.

그러나 재수없는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찾으려던 계획은

통행 차단으로 인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헐리우드 거리… 솔직히 제대로 볼만한 곳은

300미터도 되지 않는 듯 하다.

 

 

 

우리가 가려고 했던 곳은 차이나 시어터 부근이었는데

무슨 촬영을 하는 건지, 유명인사가 오는 건지

아예 길을 막아버려서 통행이 불가능했다.

가림막까지 친 것을 보면서 허무에 사로잡혔는데,

그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조금 멀찍이 차를 주차시키고 걸어 갔었는데,

그 걸어가는 여정이 결코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는 최근 마리화나 판매가 합법화 되었는데,

거리에는 곳곳에 smoke shop이 즐비했고,

골목마다 마리화나 냄새가 풍겼다.

그 고무타는 듯한 냄새가 걷는 내내 맴돌았다.

어쩌다가 맡게 되는 담배냄새가 되려 구수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5살 아이를 데리고 걷기에 아주 부적절한 곳이었다.

게다가 거리 분위기는 또 어떤가.

LA에 노숙자가 많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인도에 누워있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던지.

그것도 무언가 취해있는 듯한 눈이었다.

게다가 길거리의 상가들은 마치…

90년대 영등포 뒷골목 상가를 연상케 하는 면이 있었다.

싸구려 마네킹들이 선정적인 속옷을 입고 쇼윈도에 서있거나,

과연 누가 저걸 쓸까 싶은 오색찬란한 가발들이 즐비했다.

그밖에도 해괴한 장식품들을 파는 가게들이나,

과연 손님이 들까 싶을 정도의 후미진 편의점들.

그런 것들을 보고 놀라기엔 내 어린시절도 그다지 세련되지 않았지만,

21세기에 20세기말 감성을 보고 있자니,

그것도 그렇게 무질서하고 퇴락한 모습으로 일관된 장소가 아직도 있다는 것이

무척 겁나고 무서운 일이었다.

아마도, 한국이었으면 그러려니 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시비를 걸어 싸움을 걸어와도

최소한의 자기방어는 할수 있으니까.

그러나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걷던 그 거리는

안전하지 못한, 두려움이 엄습하는 곳이었다.

아마도 우리가 말을 잘 못해서일지도 모른다.

여튼, 그 고생을 하고 갔건만 정작 보려던 것은 못 보고 오니

LA에 대한 악감정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운전하고 호텔로 돌아가는데

마리화나 냄새가 밴듯 계속 연기냄새가 맴돌았다.

울적해진 우리는 식욕마저 달아나버렸다.

그래도 LA에 왔으니 음식이라도 소원성취해야지 싶어

비비큐 치킨을 사러 애너하임에 갔다.

 

 

 

호텔에 돌아와 오픈한 치킨의 자태는 황홀했고,

한입 뜯어먹었을 때,

그리운 맛이 선사하는 단짠의 하모니에 감탄했다.

왜 미국에는 이런 치킨을 안파는지 몰라,

그렇게 몇조각 먹고 나니 속이 느글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생각해보니 한국에서도 둘이 한마리를 다 못먹었었다.

 

우리는 디즈니랜드 옆에 있는 호텔을 예약했는데,

하루 전에 급하게 예약하는 바람에 자세히 알아보지 않았더니

호텔이 어찌나 허술하게 지어졌는지

걸을 때마다 땅이 휘청휘청거렸다.

고소공포증이 있어서인가, 계단을 올라와 복도를 걷는데

어지럽고 멀미가 날듯 했다.

그렇게 겨우 씻고 침대에 누운지 얼마 되었나,

갑자기 대포 소리가 뻥뻥 울리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 9시 30분.

디즈니랜드의 불꽃놀이었다.

전쟁이 난다면 이런 소리가 날거야,

지면이 흔들리고, 내 귀가 멍해지는 느낌.

그게 우리 여행의 첫날이었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한국치킨을 영접한 내 뱃속은 너무 놀란 나머지

4일 연속 설사를 하고 있다는 슬픈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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