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사/그 곳

Leaving Las Vegas -2

by 글쓰는 백곰 2023. 5. 13.

두번째 라스베가스는 올해 봄이었다.

아이의 봄방학이 적당히 짧았으므로

라스베가스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차가 아닌 비행기로 갔다.

 

물론 차로 가는 것보다 비용은 많이 들었지만

그것이 여행의 피로도를 급격하게 줄여줬기 때문에

돈이 가진 마력이란 얼마나 굉장한가를 또 한번 절감했다.

1시간 30분의 비행은,

흡사 집 근처 샌프란시스코를 잠깐 다녀오는 듯, 홀가분 했다.

물론 공항을 가야하고, 비행 대기를 해야 했지만

10시간이 넘는 척박한 운전환경보다는 나았다.

쉬러 놀러간다면서 첫날에 피곤하고, 마지막에 다시 피곤해지는

그런 악순환이 없다고 생각하니 세상 간편해진 느낌이었다.

돈으로 시간을 산다고 했던가,

공항을 어슬렁거리며 기념품도 사고,

공항라운지도 이용하고 (신용카드혜택), 아주 여유가 넘쳤다.

이제는 아이가 어느정도 자랐기 때문에,

호텔에서 즐겁게 게임을 하며 놀고 있으면

우리는 한두시간 정도 외출도 할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진정한 라스베가스를 느끼자면서

쇼를 예약하고 관람하기로 했다.

 

(카쇼가 열리는 내부를 찍고 싶었으나, 찍는 시늉이라도 하면 관계자가 득달같이 다가와 저지한다)

카쇼라는 라스베가스 3대 쇼 중 하나라고 하는 쇼를 관람했다.

그런 쇼를 보는 것 자체가 처음있는 일이었기에,

우리는 과감히 앞좌석을 예약했다.

배우들의 서커스와 같은 묘기와

귀를 찢어대는 듯한 효과음 때문에 번쩍번쩍 놀라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공연이 끝난후, 나는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쳤다.

내가 가질수 없는 신체적인 어떤 능력과 

또한 최대치를 끌어내기 위해 부단히 이어갔을 수많은 연습의 날들,

게다가 그것이 생명을 담보로 하는 것일 경우에는

어떤 식으로든 경의를 표현해도 모자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감탄하고 말았다.

 

그리고 호텔에 돌아와 또 호캉스를 즐겼다.

이번에는 아이없이 길거리를 걸으며, 

2년 전보다는 좀더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라스베가스의 길은 생각보다 육교가 많은 편이어서

수없이 오르고 내리는 것의 반복이었는데

안쓰던 근육을 쓴 탓에 며칠간은 발목 근육이 욱씬거렸다.

그래도 북적이는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낯선 곳을 거닌다는 사실만으로도

평소와는 달리 붕뜬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익숙한 것들이 주는 편안함을 최고로 치는 나인데 말이다.

(이름 모를 상가에 들어왔다. 가짜 하늘도 제법 운치있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서 문득 라스베가스에 대해 생각해봤다.

내가 언제부터 라스베가스에 인지하기 시작했나를 떠올려보니

고등학교 3학년때 봤던 영화 “Leaving Las Vegas”가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면 비디오를 빌려 봤던 것이지만 

(나는 그때 미성년이었지만… 여튼… 무법의 시절이었다)

솔직히 영화가 풍기는 그 암울하고도 칙칙한 분위기,

인생 막장인 두 주인공들의 자포자기한 듯한 사랑이야기를 보며

19살 짜리가 뭘 느꼈겠는가.

그래, 남자주인공이 라스베가스에 갔던 이유가 기억난다.

술이나 실컷 마시다 죽으러 간다고.

그땐 몰랐다. 

라스베가스는 흔히 씬시티(Sin city)라고 불릴만큼

쾌락적이고도 어두운 상징성을 지녔다는 것을.

며칠 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보이즈 투맨"의 다큐를 봤는데

한 시절을 풍미하던 그들이었건만 

이제는 라스베가스 쑈에서나 겨우 불러주는

그런 퇴물이 되었다는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라스베가스에 죽으러간다"며 자조적으로 말했었다.

왜 자꾸 죽으러 가스베가스에 간다는 걸까.

죽기 전에 한탕 땡기고, 뭔가 후회없이 즐기겠다는 걸까.

그래서 CSI는 라스베가스 편이 제일 재밌는 걸까.

나는 아직 인생의 어떤 황홀한 정점을 찍지 않았기 때문에

추락한다는 것, 삶의 포기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누구처럼 잘나가는 사업가가 되거나,

시대를 풍미했던 톱가수의 위치에 서있거나 하는

그 극적인 성공을 맛보지 못했기 때문에

라스베가스가 두렵지 않은 것일까.

나같은, 다만 일상을 열심히 살려고만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화려한 곳에서 죽으러 가겠다는 말은 영 딴 세상 이야기로만 들린다.

 

사막에 지어진 가공의 화려한 도시,

누군가의 음모가 아니고서야 생겨날 수 없었던 쾌락의 도시,

그곳에서 아무 생각없이 눈만 동글동글 굴리고 있는 나는

역시 어쩔수 없는 이방인인 걸까.

근데 어쩌다가 나는 여기에 와 있는 거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언제나 한결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다.

-정말 인생이란 알수 없는 것 천지야.

 

'일상사 > 그 곳' 카테고리의 다른 글

Fort Ross  (4) 2023.09.12
Leaving Las Vegas -1  (3) 2023.05.13
LA와의 날카로운 추억  (13) 2018.04.25
유니버셜 스튜디오 헐리우드  (4) 2018.02.28
3박 4일 로드트립  (4) 2017.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