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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오늘 너는

느린 아이

by 글쓰는 백곰 2017. 7. 11.

지난 6월, 너는 만5세가 되었어.

미국에서는 만5세가 되면 학교에 다니게 돼.

오스틴에서는 9월에 개학을 하는데,

9월 기준으로 만5세 이후의 어린이들이 입학하지.

(각 주마다 입학하는 달이 다르다)

한국 나이로는 아직 6세인데 초등학교를? 하겠지만

1학년이 아니라 병설 유치원 개념으로 

1년동안 킨더를 가는거래.

진정한 학교생활 이전의 훈련기간 정도로 보면 될듯해.


한국에 있을 때, 나의 걱정은 태산이었어.

맙소사. 6살에 학교라니.

너는 아주 느린 아이인데.

과연 적응을 해나갈 수 있을까.


유난하다 싶을 정도로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고,

남이 시키는 것은 하지 않으며,

운동신경도 그다지 뛰어나지 않아.

4세 이전까지 너무 자주 아팠던 탓에 

주로 집에만 있었으니 그만큼 자극이 덜하기도 했을 거야.

그렇다고 억지로 사회생활을 시켜주고 싶지도 않았어.

어린이집을 안다녀 본것도 아니었으니.

한국의 어린이집... 아무리 관리를 잘해준다고 해도

아픈 아이가 계속 어린이집에 오면

질병은 돌고 돌고 돌기 마련이었어. 악순환 같은 거지.

결국 두번이나 어린이집을 그만두었고,

그렇게 너의 사회생활을 막을 내렸어.

온갖 병을 다 걸리고 병원에 입원했던 기억이 난다.

게다가 낯가림이 심한 너는

기관을 다니는 내내 울어서

닫혀진 문밖에서 네 울음소리가 언제 그치는지 기다리곤 했어.

나중에는 문이 닫히면 언제 그랬냐는 듯 뚝 그치더라.


게다가 말이 엄청나게 느려서,

너보다 훨씬 작고 어린 아이들이 수다스럽게 쫑알대는 것을 보고 있으면

난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어.

오늘 무슨 일이 있었으며, 어떤 일이 재밌었는가 등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내 현실의 너는

묻는 말에 단답형. 그것도 성의 없이 툭 던지는.

과연 말길을 제대로 알아 듣긴 하나 걱정스러웠다.


찬바람만 쐬었다 하면 감기에 걸리고 열경련을 앓는 통에

집에만 있으니 활동량이 적어지면서

당연히 운동신경도 그다지 좋질 않았어.

성격 역시 가만히 앉아 집중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서

밖에 나가자고 채근 한번 한적이 없었고.

그래서 인가, 아직도 가끔 네가 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색해서 미칠 지경이다. 저게 뛰는 건가, 걷는 건가?

겁도 많아서 무작정 덤벼드는 성격도 아니고.

그러니 이래저래 신체활동 능력이 또래보단 처지는거지.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학습을 따라갈수 있을까 하는 거였다.

오직 자신이 관심있는 것에만 몰두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그리고 뭔가 확신이 없는 것엔 덤벼들지 않는 신중함 때문에,

요즘도 늘 먹는 것만 먹고, 하던 패턴대로만 생활한다.

게다가 펜 자체를 쥐려고 하지 않아서 

저래서야 나중에 알림노트를 써올수나 있을까 고민이었다.


엄마는 자식을 키움에 있어서 언제나 조바심을 가질수 밖에 없는 존재야.

언제 걷나, 언제 말하나, 언제 기저귀를 떼나...

결국 또래들이 어떤 속도로 가는가를 주시할 수 밖에 없어.

그런데 또래보다 한창 늦어지는 내 아이를 보게 되면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어서 전문가에게 데려가야 하지 않나?

마음이 급해지기 마련이지.

나 역시도 그랬으니까.

이렇게 엄마 스스로도 마음이 술렁이는데,

거기에 주변인이 이상하다는 투로 걱정을 보태주면,

엄마는 아주 미칠 지경이 되어버리는 거야.

내가 지켜본 바에 의하면 너는 그냥 '느린 아이'일 뿐인데.


아이는 36개월이 되면 기저귀를 떼야 한다고 해.

보통 엄마들은 아이가 의사소통이 된다 싶으면 

약간 빠르다 싶을 때 기저귀 떼기를 시도 하더라고.

그래서 성공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 초기에 너무 섣불리 시작해서 다시 기저귀를 차는 경우도 있어.

난 그냥 네가 하겠다고 할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다가 35개월에 기저귀 떼기를 시도했는데

하루만에 성공했지. 밤기저귀도 거부했었다.

그 이후 자다가도 한번 실수한 적이 없었고.


영유아검진을 했을 때 가장 속상했던 게

소근육 발달에 이상이 있어서 정밀검사를 해야한다고 했던 기억이다.

애가 3세가 되었는데도 직선, 동그라미 등을 그리지 않으면

소위 말해 정상이 아니므로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아야한다며.

......

유난히 깔끔쟁이인 네가 펜을 가지고 쓸 리가 있겠니.

그리고 나는 네가 굳이 하지 않겠다는 걸 억지로 시키고 싶지도 않았고

그러다보니 너는 아예 무언가를 그리지를 않았어.

블럭을 하고, 알파벳을 외우고, 별의 별것은 다 했지만

글씨 자체를, 선 하나 그리는 것 자체를 시도하지 않았지.

나는 그 점이 심하게 걱정 되었어.

학교 갈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갑자기 4개월전부터 네가 글씨를 쓰기 시작했어.

장난감에 들어있는 아주 작은 프레임에.

완벽하지는 않지만 숫자를 100까지 쓰는 것을 보고 놀랐지.

그래서 나는 바로 토이저러스에 가서 비슷한 자석프레임을 샀어.

쓰고 나서 쓱 하고 다시 지우는 장난감으로.

그랬더니 그날부터 하루종일 숫자와 알파벳을 하기 시작했어.

다른 아이들이 3년동안 해왔던 것을 4개월동안 다 해치우겠다는 듯이.

결국 지금은 제법 글씨도 잘쓰고, 그림도 다양하게 그려.

물론 일반 종이가 아니라, 부기 보드 같은 곳에만 하지만.


말이 없고, 대화가 안되던 너도 조금씩 소통의 방법을 배워가는 듯 해.

자기 전, 불끄고 둘이 누워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꺼내면

제법 오늘은 어디에 갔었는지, 뭐가 좋았는지 간단하게나마 말을 하니까..

비록 깊은 대화는 아니더라도, 이렇게 하루일상을 나눌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가슴벅차게 고맙고 그래.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보니,

너는 그저 '느린 아이' 라는 것.

무언가에 확신이 있어야 하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이 충족이 되었을 때

그때 움직이기 때문에 다소 느릴수는 있지만

그로 인해 실수는 적고, 속도가 빠르다는 것.

또래의 발달단계는 쉽게 따라 잡을수 있다는 것.

엄마는 그걸 믿고 기다려줘야 하는 존재라는 걸 깨달았어.

어떤 엄마라도,

내 아이가 이상하지 않은가? 의심이 든다고 해도

조금만 아이를 더욱 관찰하고 지켜본다면

아이의 성향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될거야.

게다가 아이는 나의 개인적인 욕심처럼 따라주지 않는다는 거.

내 속도대로, 사회가 바라는 속도대로 움직여 주질 않아.

그냥 아이의 속도가 있을뿐.

주변인이 아무리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해도,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세상을 통틀어 엄마 뿐이야.

너는 방식이 다르고, 시작점이 다를 뿐인거지.

그 확신을 갖기 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어.

그래도 엄마는 틀리지 않았다! ㅋ

나처럼 느린 아이를 가진 엄마들이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

세상에는 쓸데 없이 남의 육아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너무 많아

어쩔땐 짜증이 날 정도였어.

그때마다 평정심 유지하느라 엄마 너무 힘들었다.

물론 여기 미국에선 또 어떨런지 모르겠지만. 

잘 해낼수 있을 거야. 너도, 엄마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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