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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오늘 너는

엄마의 사랑

by 글쓰는 백곰 2017. 7. 21.

아침에 일어나 글을 쓰거나 책을 보고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뒤척이는 소리가 난다.

간혹 엄마, 엄마 하고 부를 때도 있는데,

어서 와서 깨워달라는 것이다.

이미 깨어있는데도.

그럼 나는 침대로 다가가 안아주면서

아이의 뺨에 얼굴을 비빈다.

-잘 잤어?

-좋은 꿈 꿨어?

-엄마는 네가 보고 싶었어.

그러면 메아리처럼 대답한다

-응, 잘잤어.

-좋은 꿈 꿨어.

-보고 싶었어.

비록 내 말을 따라하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그마저도 행복해지는 우리의 아침인사.


난 엄마에게 이렇다할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살았다.

내 위로 한 살 터울의 오빠가 있었는데,

엄마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거기로만 가는듯 했다.

머리 좋고, 넉살 좋은, 그러나 말썽쟁이 오빠와

머리 나쁘고, 무뚝뚝하고, 별 문제 없이 지내는 나는

서로 완전히 다른 성향이었는데,

타고난 천성이 그러해서 일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오빠처럼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제나 문제를 일으키는 오빠는,

집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음에도 더욱 사랑을 갈구했다.

태어날때부터 자신에게 주어진 특권처럼, 당연하기만 했다.

그러므로, 뒤에 있던 나는 그냥 조용히 지냈다.

집안에 말썽 일으키는 사람은 한사람으로 족했다.

엄마는 오빠를 사랑했다.

자식 가진 부모 입장에서 안 사랑하는 자식이 어디 있겠냐마는

유난히 사랑하는 자식이 오빠였다.

난 집안에 희생하는 자식이었고,

오빠는 집안이 희생하는 자식이었다.

성인이 되고 나선 내가 집을 돌보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짝사랑은 그치지 않았다.

엄마가 좋아하는 과일들을 사주고,

엄마를 매일 출근시켜주는 것도 나였는데,

엄마는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병으로 훌쩍 떠나버렸다.


엄마 없이 아이를 낳았다.

무엇을 해야할지도 몰랐고,

내가 아기였을 때 어땠는지 말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외로움과 어려움 속에서 아이를 키워야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내가 엄마와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때까지,

엄마는 아침마다 나를 흔들어 깨우며

기분좋게 안아줄때가 있었다.

일어나야지, 하면서 포근히 안아주던 기억.

그러면 아주 기분좋게 일어날수 있었다.

고등학생이면 엄마보다 덩치가 컸을 텐데도,

마치 귀여운 아이 깨우듯 만져주던 엄마의 손길...

그것을 내가 아이에게 똑같이 하고 있었다.

엄마에게 배운 거라는 것 알았을 때, 

나는 그만 마음이 먹먹해져 울고 말았다.


몰랐다.

엄마는 엄마의 방식으로,

그렇게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자식은, 또 다른 자식과 비교하며

모자르다, 불공평하다, 쉴새없이 불평했지만

이 자식은 이 자식대로 이쁜 자식이었던 것이다.

다만 베풀어줄수 있는 것이 한계가 있을 뿐이었으며,

14살에 혼자 서울에 상경해 공장을 다녔던 엄마는

어떻게 해야 자식에게 사랑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었을 뿐.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었는데.

나는 이제 부모가 되어서야

부모의 마음을 헤아린다. 


엄마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알려준

가장 큰 선물이 하나 있다.

인생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교훈.

그렇게 건강하던 엄마가 갑자기 암에 걸려 돌아가시고 

시간이란, 인생이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는 것을

내 인생에 심어주고 가셨다.

그러니 한 순간 한 순간이 소중한 보물이며,

헛되이 보내지 말라고.


아이가 생기고 나서, 

아이에게만 내 인생을 쏟아붓는 것이

너무나 지치는 일이고, 허무한 일이어서

한동안 우울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언제 죽을 지 모르며

내게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인지 모르기 때문에

아이와 함께 있는 이 시간이 무척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꼭 어딘가를 가야하고

재밌는 놀이를 같이 하는게 아니라

그냥 아이의 유년기를 엄마와의 일상으로 채우는 것.

언제나 엄마가 옆에 있었다는 것.

그것이 아이에게 가장 큰 선물이며

나에게도 가장 큰 추억이 될 것이다.

시간은 돌아오지 않으니까.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엄마를 이해하고 더욱 뜻깊은 시간을 보냈을까?

아니, 아닐 것이다.

사람이란 어리석어서, 어떤 큰 계기가 있어야만

삶의 진실을 깨닫는 법이니까.

때론 그렇게 힘들게 얻은 교훈마저 망각하고 살아간다.


내 아이는 엄마의 사랑에 만족하고 있는걸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훗날에라도 알아주기를 바란다.

그땐 그럴수 밖에 없었던,

엄마의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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