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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오늘 너는

4세 남아의 일상

by 글쓰는 백곰 2015. 6. 8.

오전 9시, 출근하는 아빠가 가만가만 이름을 부르며 깨우기를 시도하지만

너는 지난밤 12시가 넘는 시간까지 촐랑거리며 놀다가 잤으므로 눈이 떠지질 않는다.

아빠의 다정한 목소리따윈 가볍게 무시하고 이불에 머리를 박은 채, 움직이지 않는다.

몇분이 지났을까, 이번에는 엄마의 공격이다.

뽀뽀를 하면서 옆구리를 간지럽힌다. 

그제서야 못 이긴 척 히히히 웃으며 몸을 꼬기 시작한다.

그리고선 거실로 걸어가 소파에 턱 몸을 걸친다.

멍 때리기를 몇 분, 엄마의 화장실행 권유를 받고

아차, 번쩍 정신이 들어 변기앞까지 뛰어간다.

엄마가 유아용 변기를 준비하는 동안 발을 동동 구르며 재촉을 한다.

그리고선 시원하게 일을 본 후,

물을 내려주고, 변기뚜껑까지 닫아준다.

나는 청결한 남자니까.


다시 소파에 앉아 있으면 엄마의 요거트가 온다.

몇모금 빨아먹고 있으면 엄마가 어린이집을 가자며 옷을 가져온다.

그러면 그때부터 짜증이 생성된다.

잉잉잉 계속 반복한다.

양말, 잉잉잉

바지, 잉잉잉

쟈켓, 잉잉잉

신발, 잉잉잉

저렇게 입을 것들을 내게 지시하는 동시에 짜증도 같이 낸다.

더운데 쟈켓은 입지 말라고 하자 징징대던 얼굴에 노여움이 서린다.

아, 네네, 그냥 입고 쪄 죽어도 모릅니다. 저는.

신발까지 신고 현관문을 열어주면, 

바로 앞집 어린이집이 보인다. 짜증의 게이지가 높아진다.

초인종을 스스로 누르며 잉잉잉.

선생님이 반갑게 문을 열어주면 

번개같이 들어가면서도 잉잉잉...

이렇게 너의 등원은 끝이 나고...


꿀같은 3시간의 시간이 지난다.

그동안 엄마는 밀린 일을 하고

여유로운 점심시간을 즐긴다.

1시가 다가올 때 즈음이면 엄마는 서서히 초조해진다.

1분 1초라도 더 알차게 보내야 해! 무엇을 해야한다는 강박이 엄마를 압도한다.

땡 1시가 되면 엄마는 어린이집 초인종을 누르고,

이미 다 대기하고 있었다는 듯 쟈켓까지 입은 네가 '엄마!' 하며 환히 반긴다.

엄마도 반갑기는 하다. 몇초만... 


요즘은 그래도 어린이집 적응이 되어서 

밥을 먹는다고 한다. 잉잉잉 하면서. 아... 그냥 먹으면 안되겠니.

밥을 적게 먹은 날엔 엄마가 다시 밥을 챙겨준다.

무슨 밥을 성인 밥그릇보다 더 많이 먹는다.

난 애들은 다 그런 줄 알았다. 볶음밥 한사발 정도는 기본인 줄.

그러나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관찰해본 결과,

식판의 작은 밥마저도 다 먹지 않는 애들이 많았다.

너는 내내 먹지 않다가 식판 밥을 리필해서 먹어서 선생님의 감탄을 자아냈다.

여튼... 그렇게 먹고선 알파벳 늘어뜨리는 일련의 작업을 한후

당당히 엄마에게 아이패드를 요구한다.

엄마는 가볍게 묵살한다.

그러면 엄마에게 달려들어 박치기로 엄마를 치받는다.

딱히 아프지는 않지만, 기분이 아주아주 나빠지므로 엄마가 한소리 한다.

그러면 손으로 눈을 가린채 엎드려 우는 시늉을 한다.

아빠가 있었으면 가서 달래주었겠지만, 엄마는 매정한 사람,

몇분째 엎드려 있어도 반응이 없다.

그러면 서서히 일어나 다시 헤헤헤 놀기 시작한다.


낮잠 안자겠다고 버티다가, 3시 즈음 잠이 든다.

보통, 자발적으로 잔다고 하는 경우는 없고

엄마가 안방에 들어가 자고 있는 시늉을 하면

본인도 그냥따라 안방에 들어가는 것이다.

자는 시늉을 하던 엄마는 실제로 잠에 빠진다.

넌 몇분이고 노래하고 놀다가 어느샌가 엄마의 겨드랑이에 머리를 박고 잠이 든다.

왜 겨드랑이에 그러는지는 모르겠다. 여름이 두려워진다.


두시간의 낮잠을 자고 나선 짜증이 난다.

옆에 있을줄 알았던 엄마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잉잉잉 징징징, 안방에서 걸어나와 엄마를 찾는다.

안아주면 그럭저럭 못이긴척 아기놀이를 한다. 키가 1미터 육박하는 것이.

정신을 차리고선 TV 를 본다.

영어 동요를 부르거나, 다시 알파벳 놀이를 하고, 가끔 책을 읽어달라 가져다 준다.

그러고 있다가 아빠가 오면 아빠에게 찰싹 붙는다.

'여기' '여기' 하면서 아빠를 자신의 옆자리로 부르고

아빠가 피곤해서 누워라도 있으면 '일어나요' '일어나요'

종부리듯 부린다. 아빠는 피곤해진다. 엄마를 원망하기 시작한다.

엄마는 적당히 관망하다가, 분위기가 험악해지면 아빠를 공부방으로 보낸다.

예전같음 공부방 문을 못열었을 텐데,

이젠 손아귀 힘이 좋아져 빡빡한 그 문을 잘도 연다. 

아빠는 슬슬 애가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아이와 레슬링을 하고... 8시에 밥 한사발 먹고...

11시가 넘으면 유산균을 먹고, 코를 파고, 양치를 한다.

혼자 양치하겠다고 하면서 산지 얼마 안된 칫솔을 아주 작살을 내놓는다.

엄마가 해주겠다고 권유했지만, 불같이 화를 내는 통에

본인이 다 자근자근 칫솔을 씹은 후에야 엄마에게 기회를 준다.

그리고... 불을 끄고... 잠이 든다...



이랬는데... 망할 놈의 메르스 덕분에 3시간의 꿀타임은 사라지고

24시간 밀착육아... 하... 

힘들다...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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