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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머리 자르는 날

by 글쓰는 백곰 2017. 7. 31.

사흘 후면 남편이 캘리포니아로 면접을 보러 간다.

먹으면 다 머리카락으로 가는가(?)

어느새 더벅머리가 되어 있는게 보기 싫어

머리를 잘라주기로 했다.


한국에서는 주로 미용실을 이용했었다.

아이는 동네미용실에서 8천원이면 끝이었고

남편도 다니는 미용실이 따로 있었다.

그러다가 미국에 오고 나니

뜻하지 않은 자력갱생의 길을 걷게 되었다.

솔직히 손재주가 뛰어난 편이 아니어서,

미국에 오기전 학원이라도 다닐까 했는데

마지막엔 시간에 쫓겨서 아무것도 못하고

다만 가위와 미용제품 몇개를 사왔을 뿐이었다.


처음 머리 자를 때만 해도

서투르고 요령이 없어서 꽤 애를 먹었다.

그 후로 3번 더 자르고 보니

이제는 대충 어찌해야할지 답이 나온다.

그렇다고 스킬이 엄청나게 늘거나 한건 아니어서

남편을 잘라주는데 1시간,

아이를 잘라주는데 10분 정도가 걸린다.



(처음 머리 자르던 날. 아이의 오만상)


아이는 겁이 많은 편이다.

한국에서 머리 자를 때도

내가 미용의자에 앉아 무릎위에 앉힌 채

아이를 겨우 진정시켜 머리를 자르곤 했다.

머리숱도 별로 없고 난이도는 나쁘지 않은데

울고불고 머리를 흔들어 대는게 힘들었다.

처음에는 살살 타이르다가, 나중에는 내가 힘들어져

빽 사자후를 뿜어냈더니 얌전히 협조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대체로 트리머의 윙 하는 소리를 싫어하므로

그냥 가위로만 잘라주었더니 

이제는 견딜만 한가보다.

머리 자르자, 한마디에 의자에 척 앉는 걸 보면.



(미용도구. 총 7만원 정도 들었다.

본전은 뽑은 듯. )


문제는 애 아빠다.

와... 머리숱 장난 아님..

게다가 엄청난 짱구에다가,

붕붕 뜨는 뒷머리여서 최고난이도를 자랑한다.

아이는 대충 삐뚤게 잘라져도

아이 특유의 귀여움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만

성인 남자는 경우가 다르다.

그것도 하필 저런 극악스러운 머리를 만나서... -.-;

처음에 머리를 잘라주었을 때는

머리를 층지게 잘라 주었다고 항의하고,

나중에는 앞머리를 너무 잘랐다고 불평하고...

최근에는 2시간에 걸쳐 머리를 잘랐던 기억이다.


한국에서도 남편은 미용실 고르는게 까다로웠다.

저런 특수머리는 미용사들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맘에 들지 않게 머리를 자르고 온 날이면

남편은 하루종일 투덜대곤 했다.

그러나 소심한 성격이라 

당사자에게는 한번도 항의한 적 없었다.

그러나 이제 만만한 마누라쟁이를 만났으니

무슨 방언 터지듯 쏟아붓기 시작하는데

나는 정말 그때그때마다 힘이 들었다.

자르기도 힘들구만, 

불평쟁이까지 얼러야 하니.


4번째 헤어컷을 하던 오늘.

아무리 횟수가 거듭되었다고 해도

내가 프로도 아니고,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제대로 하기 힘든 건 당연한거 아닌가.

헤어컷이 거의 다 끝나갔을 무렵,

남편은 허리가 아프고, 숨이 안쉬어진다며

어서 끝내라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머리가 층지게 잘라졌길래

나름대로 유연하게 다듬으려고 트리머도 만져보고

애쓰고 있는 나에게 자꾸 저런 소리를 해대니

내 가슴속엔 깊은 빡침과 울화가 샘솟았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묵묵히 헤어컷을 완성했다.

다 끝내고 나서 한마디 했다.


너, 이 @@ !!!

다음엔 미용실 가서 해!!!!

다신 안잘라줘!!!!


남편은 머리를 감고 난 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머리를 보더니

만족스러운 듯 웃으며 한마디 한다.


이제 아주 잘 자르네?

앞으로 내가 헤어컷 비용으로 10불씩 줘야 겠어~


에라이!!! 

10불이 아니라 100불을 줘도 안한다..!!!

한달이면 너는 

내게 굽신거리며 사정하게 될 것이야!!!

이렇게 벼르고 벼르며 마음을 안정시키고 있다.

하아... 알뜰한것도 좋지만 

이렇게 빈정이 상하는 건 어쩔건가...


힘든 하루였다. 머리 자르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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