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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의 소녀들에게 며칠 간 몸이 아팠다.그래서 되도록 의식적으로 몸을 쓰지 않으려고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어제는 한국단편 소설을 읽었는데,낯익은 듯한 상황과 인물들이 갈대처럼 흔들리고 있었다.주인공은 고아로 수녀님이 돌보는 보육원에서 자랐다.이제 그녀는 스스로의 밥벌이를 하는 성인이 되었지만유년기의 상실은 두고두고 그녀의 일상을 맴돈다.그래, 나에게도 그녀와 같은 소녀들이 있었다.우리는 서로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는 있지만만나본 적은 없는, 그런 사이였다. 20대 중반에 시작한 방통대 공부는나에게 여러가지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었는데,그 중 특히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배움이란 단순히 아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그것을 실천하는 순간 완성된다는 것이었다.단순히 어떤 것이 좋다에서 그치지 않고그것을 실행할 내 능력이 조.. 2020. 6. 19.
불청객들 요즘 들어 우리집 주변을 시끄럽게 하는불청객이 둘이나 생겼다.그들 때문에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우리집은 타운하우스의 끝자락인데,바로 옆엔 아직 건물이 없는 공터가 남아있다.안내문을 읽어보니 타운하우스를 지을거라고 했다.그러나 공사하는 시늉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나날이 잡초만 정글처럼 우거지고 있다랄까.그 공터에 때때로 노숙자들이 찾아온다.우리가 사는 타운하우스를 경계 지어주는 벽면 뒤에노숙자가 지내는 모양이다.자신의 쓰레기를 담장 너머로 던진 흔적이 쌓여간다.사실 그것 자체만으로도 그의 존재는 비호감인데,밤이 되면 그의 꼴통 진가가 제대로 발휘된다. 전에도 말했듯이 우리집 옆으로 기찻길이 있는데갈 때마다 큰 경적을 울리고 간다.그때마다 노숙자가 고래고래 욕을 하는 것이다.그리고 밤마다 술에 취한 것.. 2020. 5. 25.
Mother's day (그 남자의 사랑법) 지난 주 일요일은 어머니 날이었다.미국에서는 어머니날, 아버지날이 다르게 정해져 있는데그 중에서도 어머니날을 대대적으로 기념하는 편이다. 보통 자녀들이 어머니에게 감사 카드를 쓰거나작은 선물을 준다거나 하는 듯 하다.아이가 학교에 다녔다면 그럴싸한 카드를 받았을지도 모르나지금처럼 하루종일 24시간 붙어 있는 입장에서깜짝 선물을 기대하는 건 다소 무리한 설정이긴 하다.그래도 마음 한편으로는 조금 기대하고 있었다. 친구들의 카톡 프로필 사진들을 보니아이들이 엄마에게 써준 편지와 선물들이 보였다.비록 단어의 철자가 틀리고, 맥락도 엉망이지만그 삐뚤한 맛이 진짜 참맛이 아닌가 싶었다.있는 그대로, 날것의 효도랄까.누가 옆에서 멘트를 불러주는 것도 아니고순수하게 자신의 의지대로 하겠다는 노력의 흔적. (2년 전,.. 2020. 5. 15.
엄마 선생님 요즘 들어 하루하루를 꽉꽉 채워 사는 느낌이 든다.뜻하지 않게 아이의 선생님이 된 것이 그렇고,갑자기 남편의 점심도시락을 싸게 된 것이 그렇다. 등교시간이 있는 것도 아닌데,아이는 일어나자마자 식탁 앞에 앉는다.무얼 먹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오늘 하루 할당된 학습량을 어서 해치우자는 뜻이다.학교도 8시 30분에 수업시작했으니우리도 그 시간에 시작하자고 했으나말이 통하지 않는다. 어서 하자고 한다.다행인지 불행인지,우리 아이는 해야할 일을 어서 해치우자는 스타일이다.덕분에 나는 눈꼽도 떼지 못한 채 같은 테이블에 앉는다. 우리는 Google Class 에서 그날의 학습과제를 받는다.봄방학즈음 선생님이 다양한 교재를 우편으로 보내줬고,그것과 별개로 다른 수업들에 대한 지침들을 그때마다 보내준다.하루에 해야.. 2020. 5. 5.
블로그를 방문해 주시는 분들께. 티스토리 블로그를 운영한지 벌써 만3년이 되었습니다.그리고 최근 구글에서 광고비도 입금되었어요.총 101.97 달러였습니다.그동안 쓴 글의 양에 비하면적다면 적을 수도, 그동안 쓴 글의 질에 비하면많다면 많다고도 할 수 있는 금액입니다. 글을 써서 돈을 벌 수 있기를 늘 바라고 바랐습니다.30대에 드라마 공부하던 때가 그랬고요,이 블로그를 시작하던 3년 전에도 그랬습니다.미국에 오고 보니 제가 돈을 벌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더군요.아이는 어리고, 어차피 언어도 안되니,이렇게라도 돈을 좀 벌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시작한 블로그였습니다. 블로그를 3년 운영해 왔지만3년을 온전하게 써왔다고 하기엔 부끄러운 면이 다소 있습니다.특히 지난 1년 동안은 내내 마음이 편치 않은 일들이 있어서무언가를 써내려간다는 것 .. 2020. 4. 26.
우리집 겜돌이들 남편은 나와 연애하던 시절부터 입버릇처럼 말했었다.자신은 아들에게 친구같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고.그때마다 나는 아버지와 아들이 농구를 하거나사이좋게 캐치볼을 하는 풍경을 상상했었다.그런데 이게 웬걸,지금 두 사람의 겜돌이가 서로에게 소리치며 게임 중이다.-아, 거기로 가지 말라고!-그게 중요한게 아니라고!그래… 친구같긴 하다. 그래 뵌다… 남편은 비교적 어린시절부터 다양한 게임들을 접해 왔다.그래서 나름대로 게임에 대한 철학도 가지고 있다.남편 왈, 무슨 게임이든지 100시간 정도는 해봐야 그 게임에 대해서 안다고 할수 있다고 한다.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는데 (수긍하는 순간, 게임시간을 허락해줘야 할것 같은...)그 말을 들었던 동네 고등학교 남학생은 그 철학에 큰 감명을 받았다나 뭐라나… 여튼….. 2020. 4. 18.
그럼에도 꽃은 피고 집에서만 생활한 지 어언 4주가 되었다.처음에는 낯설고 답답하고 그러더니만적응이 된건지, 포기를 하게 된건지,그럭저럭 하루하루가 무던하게 지나가고 그렇게 또 감사하고 뭐, 그렇다. 뉴스를 봐도 미국은 연일 신기록을 갱신하고 있을뿐.동부, 특히 뉴욕이 심한 상황인데나중에라도 동부가 진정된다고 해도서부로 옮겨가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는 것이고이래저래 낙관적인 기대에서 반포기상태(?)에 들어섰다.남편은 아직도 재택 근무를 하고 있지만,5월엔 출근할지도 모르겠다. 장기간으로 가는 코로나 사태를 대비해서한국에서 쌀도 많이 주문하고,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색종이, 그림그리기 책도 주문하고,나의 정신 건강을 위한 소설책들도 잔뜩 주문했다. 모두 다 선박이라서 6주 가량 시간이 걸리겠지만그 정도야 뭐… 급한 것도.. 2020. 4. 12.
너를 생각해 밖에는 봄비가 추적이고 있다.사흘째 오락가락 내리는 비를 보면서 나는 내 친구를 생각한다.월말에 이사한다고 했는데, 이 혼란한 시기에 잘 했는지 궁금하다. 작년에 한국에 갔을 때,우는 친구를 남겨 두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 와야 했을 때나의 마음은 조금도 편하지 않았다.시간이, 언제나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그러다 며칠 후, 사정이 생겨 열흘간 집에 혼자 남게 되었다며그동안 우리집에 와도 되겠냐는 친구의 말을 들었을 때나는 너무나 기뻤다.내가 미국에 살고 있다는 게 기뻤다.물론 친구는 여러가지 복잡한 것들에게서 잠시 벗어나마음 편한 친구가 있는 곳에 오는 것이겠지만,그런 안식처로서 나를 떠올려 줬다는 것만으로도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늦은 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친구를 기다리며왠지 모를 설렘도 들었.. 2020. 3. 29.
친구들의 사랑 지금 미국은 생필품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그럼에도 내가 여유 있게 버틸 수 있는 이유는첫째, 나의 ‘쟁겨 놓는 버릇' 때문이며둘째, ‘친구들이 보내준 사랑(?)’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게 식량을 보내주는 친구들이 있다.그들이 보내준 비상식량은 대개 이렇다. 주로 건어물 (새우,멸치,김,미역,북어)과각종 식자재(선식, 누룽지, 참기름 등)이다.각자 나름대로 미국에는 흔하지 않다고 생각한 모양이다.두 사람이 보내주는 물건들은 간혹 아이템이 겹치기도 하는데그 속에서도 또 묘한 차이점이 느껴지기도 한다. 우선, 내가 작년에 한국에 갔을 때한 친구는 누룽지 3키로, 미역, 김, 선식 등을 보냈다.이 친구는 현재 맞벌이를 하고 있고요리할 시간이 별로 없어서인지주로 간편식으로 먹을 수 있는 완제품을 고급 품질로 .. 2020. 3. 24.
강제격리생활 4일차 코로나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지금,우리집은 강제격리생활을 이어가고 있다.현재 미국은 정부에서 되도록 외출을 하지 말 것을 권하고 있는데그마저도 지역마다 강제하는 정도가 좀 다른 편이다.우리가 사는 Bay 지역은 3월 17일부터 4월 7일까지,3주간의 외출금지명령이 떨어졌다.그 때문에 모든 근무자들이 재택근무를 하고 (물론 가장 중요한 업종 관계자는 출퇴근 가능)학교는 당연히 폐쇄되었으며,외출하는 사람들에겐 경찰의 단속이 있을 거라 했다.물론 예외사항도 있긴 한데,식료품이나 생활용품등의 쇼핑을 하는 경우는 허락된다. 뭐… 이렇다보니 집에서만 생활한지 4일째이다.우리집엔 비상식량이 그럭저럭 넉넉한 편이었지만남편은 기호식품이 필요하다며 (인간다움의 척도라며)스스로 쇼핑을 가겠다고 했다.내가 갈까도 했는.. 2020. 3. 20.
오늘은 초코소라빵 며칠 전부터 남편이 노래를 불렀던 초코소라빵을주말을 맞이하여 만들어 보았다.한국에 있었으면 동네빵집에서 사 먹으면 될 일이건만미국에 사니 뭐 하나 간단한 것이 없다. 그동안 만들어 먹었던 빵들…우유식빵, 옥수수식빵, 밤식빵, 크랜베리 호두식빵, 소보루빵, 단팥빵, 치아바타, 생크림빵, 스콘, 와플 등…나는 주로 식사가 될만한 것들을 주로 만들어냉동고에 가득 쌓아놓곤 한다.종류별로 채워 놓으면 밥하기 싫을 때 내키는 것을 골라 다양하게 먹을 수 있고밖에서 사 먹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기도 하다.언젠가 화장실이 급해서 뚜레쥬르(미국)에 들어갔는데빈손으로 나오기가 뭣해서 작은 식빵 한 통을 샀었다.그 손바닥만한 식빵 사이즈가 5불이 넘었다.남편은 *값이라 생각하며 넘기라고 했지만,양이 많은 것도 아니요, 맛이.. 2020. 3. 11.
짧은 귀국 - 다섯째 날 친정집에서 정신을 잃을 정도로 곤히 자고 일어났다.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이었지만,남편에게 줄 여러가지 간식들을 사려고 홈플러스에 갔다.미국에 있다보니 한국의 최신 식료품들이 너무 먹고 싶었다.내가 사는 곳에도 한국마트가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평균적이고도 대중적인 식품들만 팔기에(아마도 한국에서의 유행이 돌려면 2,3년은 필요한듯)어쩌다 유튜브에서 편의점 신상품들이라도 보는 날엔어찌나 먹고 싶고 궁금하던지,한국에 가면 내가 꼭 구해오리라 남편에게 호언장담했었다.여기 홈플러스는 내가 회사 다닐 때 주로 가던 곳이었다.주차장부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통로,다 눈에 익고 발길이 익숙하던 곳이었다.별거 아닌 마트임에도 불구하고왜 그렇게 친숙한 느낌에 울컥이던지.저기 푸드코트에서 엄마와 냉면을 먹었었지,.. 2020. 3.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