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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165

미국 생활의 어려움 한국에 있을때나, 미국에 있을때나나의 삶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다.교육기관을 다니지 않는 아들과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며,일반 가정주부들처럼 집에서 밥해먹고 청소하고 빨래하고.내가 미국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것은일주일에 두어번 식자재를 사러 쇼핑갈 때가 대부분이다.그렇기에 3개월이 지났지만, 많은 사람을 만났다고 하기도 어렵다.게다가 우리집은 아직 아무런 소득이 없는 상태이므로남편이 어디에 취직하느냐에 따라 또 거주지를 옮겨야 한다.그래서 여기에 완전히 정착 해야겠다고 할수도 없어이래저래 마음 붙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미국에 오면 외롭지 않냐고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다글쎄...나는 원래 한국에서도 외로웠다.친구들은 서울에 살고 있었고, 각자의 가정과 일이 있었으며친정엄마는 돌아가셨고, 아빠는 재혼하.. 2017. 7. 17.
미국생활에서 무서운 것들 나는 원래 겁이 많은 편이다.특히 사소한 것에도 깜짝깜짝 놀라곤 하는데미국에 오니 더 자주 놀라는 듯 하다. 첫번째. 바퀴벌레가 무섭다.오기 전부터도 미국은 벌레의 천국이라는 얘기를 들어서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건만,새벽에 화장실에서 마주친 그 바퀴벌레는지상최고의 크기를 자랑했다. 와우. 너무나 웅장한 스케일이어서 답도 나오질 않았다..식구들이 다 자고 있는데 수선을 떨수 없어서(그땐 파리채와 스프레이등 아무 것도 없었다)화장실 문을 꼭 닫고다시 침대로 들어와 눈을 감았는데잠이 오질 않았다.이런저런 걱정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분명히 한마리가 아닐것이야,아주 어렸을 때 영등포 살때에 그렇게 바퀴가 많았다.자다가 얼굴에 떨어진 적이 있을 정도.그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르면서결국 다시 잠에 들지 .. 2017. 7. 15.
새벽 5시 50분. 미국에 오고나서 처음으로 새벽에 일어났다.오래간만의 시간,오랜간만의 공기.비록 여기는 낯선 땅이지만,해가 뜨기 전의 고요함과 기대감은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인 듯 하다. 나는 중, 고등학교를 멀리서 통학했었다.학교는 서울에 있었는데,집은 경기도 시흥에 있었다.원래 서울에 살고 있다가 중학교 1학년때 경기도의 판자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그전에도 신정동의 반지하 집에서 살았으니,내 유년기는 한번도 넉넉한 기억이 없다.자주 이사를 해야했고, 그때마다 학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그때도 이사를 왔으면 전학을 해야했는데, 그게 지독히도 싫었다.그래서 나는 새벽 일찍 일어나 버스와 전철을 타며 통학했다.버스를 타고 부천역에서 전철을 타고개봉역에서 내려 다시 마을버스를 탔다.그런식으로 통학을 한건 고등학교 떄까지였.. 2017. 7. 14.
한국에서 미국까지의 이사 -2 (미국편) 미국에 오기까지의 이사 과정 중말 그대로 미국에서의 이사 내용만 간추려 본다.(그 전의 내용은 앞글을 참고하시기를) 2월이 되고 나서 한국아파트 매매계약을 하게 되고3월 중순에 잔금을 받기로 정해지면서자연스럽게 출국날짜가 정해졌고,2월 말, 남편은 홀로 미국으로 아파트를 구하러 갔다. 물가가 싸고, 남편의 직업군이 많다고 해서 정한 곳이텍사스 오스틴이었는데, 인터넷으로 검색해본 결과한국인 부동산 중개인이 있어서 그분과 계약을 진행하기로 했다.미국으로 가기 전 그분과 이메일로 계약관련 서류 및 스케줄을 조정하였다.우리는 아직 소셜넘버가 나오지 않았고,미국에 처음 가는 것이기 때문에 렌트하는 아파트 입장에서는 여러 서류를 제출하라고 하는데보통 잔고증명서, 재직증명서 등이다.그 사람의 재정상태를 보고 세를 주.. 2017. 7. 14.
한국에서 미국까지의 이사 -1 (한국편) 우리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사온 과정을 써보려 한다.물론 사람마다 재정상태나, 이사 기간이 다르므로우리의 이사과정이 절대적이라는 게 아니라는 걸 염두하시길. 우리는 영주권이 작년 10월 28일자로 나왔다.이 날짜는 우리가 신체검사를 받은 날로써그 후로부터 6개월 내로 출국을 해야만 한다.영주권의 유효기간이 신체검사 받은 날로부터 유래하는 것이다. 이민이 확정되고 나서 가장 먼저 했던 것은 집을 매물로 내놓는 거였다.우리 재산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이다.우리집은 아파트 1층이었는데매물로 내놨던 시기는 12월부터였다.겨울에 매매성수기가 아니고 1층은 선호하지 않는 탓에빨리 내놓는 게 좋다는 중개업자의 조언에 따라서.그 큰 부분이 해결되어야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고이사 올 아파트를 계약할수 있는 거였.. 2017. 7. 13.
성경필사 나의 하루 일과 중 가장 먼저 시작되는 것이 성경 쓰기이다.아침에 일어나 물 한잔을 마시고 책상에 앉아 계속 써 오던 부분을 펼쳐 또박또박 한글자씩 옮겨 적는다.그렇게 한 장 이상을 쓰는게 목표이다. 난 기독교인이지만, 사실 믿음에 자신은 없다.그러므로 누구를 전도할만한 능력도 되지 못한다.내가 생각하는 전도란말로써 상대방에게 믿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전도자 그 사람의 됨됨이와 그의 일상에서 묻어 나오는 선함으로 인해타인으로 하여금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신앙을 가지게 된 건 약 9년 전.엄마가 말기 암환자가 되었을 때였다.그 전에도 내 인생에 있어 여러가지 굴곡이 있었지만나는 종교를 가지지 않았다. 그래도 그럭저럭 이겨낼수 있었고.그런데 '죽음'이라니.이건 정말 인생 고난의 끝판.. 2017. 7. 12.
인종차별 미국에 오기 전에, 인터넷상으로 여러가지 정보를 접했는데,아직도 미국은 인종차별이 심하다는 글을 읽었었다.특히 남부쪽으로 갈수록 심하다고 한다.무엇보다 동양인은 흑인들보다 더욱 차별과 무시를 받는다고 어쩔때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성토하는 글들을 보기도 했다.그래서 한국에 있을 때 얼마나 걱정을 많이 했는지 모른다.참고로, 내 영어 수준은꿀먹은 벙어리요, 심지어 유튜브로 단련된 5살 내 아들보다도 못하다.그러니 잔뜩 위축되어 겁이 났던 것도 사실이다. 처음에는 남편과 무조건 같이 움직였기 때문에미국인들을 1대 1로 마주칠 일이 없었다. 내가 원치 않았으므로.그러다가 남편의 격려와 압박에 힘입어(?)혼자 마트도 가게 되었고, 아파트 오피스에도 가게 되었다.처음 마트에 가서, 예정에 없던 상황이 속.. 2017. 7. 10.
이민오기까지의 근황 (달라스 공항에서) 미국 생활을 시작한지 벌써 3개월이 넘었다.여기서 왜 미국에 오게 되었는지를 간단히 써봐야겠다. 남편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한국의 대기업을 다니고 있었다.그러나 회사의 시스템상 경쟁이 날로 치열해 지는 분위기와,어느 연차가 되면 개발직이 아닌 관리직으로 올라가지 않으면 퇴사하는 분위기 등여러가지 근무 여건이 남편에게 적절하지 않았다.게다가 대기업이란 자신의 구미에 맞게 사람을 재배치함에 있어서 아무 감정적 동요가 없는 곳이다.그게 사회라는 것이고, 한국 직업의 생태계였다.우리 나라 모든 사람들이 선망하는 회사를 다니고 있었지만,남편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일이 싫은 것이 아니었는데 말이다.그래서 해외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때마침 국내 정치도 어수선하게 돌아가.. 2017. 7. 9.
사진 찍는 날 여권을 다시 만들기도 해야 하고,운전면허 갱신도 해야 해서 사진을 다시 찍었다.지금 여권과 운전면허 모두 똑같은 사진이고, 8년 전의 사진이다.그 사진은 나의 증명사진 흑역사 중에서 유일하게 건진 것이었다.그러나 나는 늙었고 그러므로 사진도 갱신해 줘야 한다.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 왜 그렇게 부담스러워지는지.안하던 화장을 하고, 최소한 피부톤이라도 깨끗하게 하려고 말이다.안하던 머리 산발을 하고. 최소한 얼굴이 작게 보이려고 말이다.그러나 두 가지 예상은 더욱 참혹한 결과를 불러왔다.안하던 화장은, 음영조절을 하지 않아 아주 넙대대한 얼굴을 완성시켰고머리 산발을 해봤자, 여권사진은 귀가 보여야 하므로 얼굴형이 그대로 드러난다.나... 뭐 한걸까...결과물을 봤을 때의 참혹한 심정이란.역시나. 내 이럴 줄.. 2015. 10. 20.
외로움이 다가올 때 며칠동안 아이가 아팠다.사실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감기였음에도 불구하고,과거에 대수롭지 않게 넘긴 적이 별로 없었으므로완전히 나았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계속 지켜보는 수밖에 없없다.추석부터 아프기 시작하더니, 추석 당일엔 새벽에 응급실에 갔었고,결국 그렇게 열흘동안은 집에서 같이 있었다. 남편은 휴직중이다. 이직을 위한 휴직.학원을 다니고, 독서실에 다니며 공부를 하고 있다.휴직하고 있다고 해서, 열흘동안이나 아이와 같이 있을 필요는 없다.여튼... 열흘이나 아이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고 나니나는 무척이나 힘들었다.단조롭고도 계속되는, 반복적인 놀이와 이런저런 아이의 요구.엄마만 있고, 나는 있어서는 안되는 시간의 연속. 그렇게 열흘을 보내고, 드디어 감기가 다 나아서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던 날.월요일.. 2015. 10. 13.
Studying English 강제 영어공부가 시작되었다.남편이 수강신청한 인터넷학습강좌 프로그램이생각보다 남편의 수준엔 맞지 않는 모양이었다.그러나 수강을 완벽히 하지 않으면 벌금 비슷한 걸 내야 해서,어쩔수 없이 인터넷학습강좌를 플레이만 하겠다고 내가 떠맡았다.그런데 다행히도, 나의 레벨에는 맞춤이나 마찬가지여서갑자기 화이팅 넘치는 영어공부가 시작된 것이다. 나의 첫 영어 강사는 (학교는 예외) 이시원.사실 그다지 세련되거나 능수능란한 강사 스타일은 아니다.그의 외모에서 풍겨나오는 친근함. 옆집 청년 같은.영어를 이렇게 쉽게도 배울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나의 은인.은인이라고 밖에 할수 없다.사실 나는 심한 영어 컴플렉스에 시달렸는데,아이가 커가면서 더더욱 스트레스가 되었었다.우리 시대와 내 아이의 시대는 영어 노출정도가 다를 뿐더.. 2015. 7. 23.
사재기의 충동 가끔씩 돈이 막 쓰고 싶어질 때가 있다.어지간하면 쓰지 말자는 주의지만, 갑자기 돈을 써야 겠다는 사명감마저 불타오르는 시기가.왜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땐 돈을 쓰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자, 그럼 어디에 돈을 부어 볼까.그래, 이 후줄근한 아줌마 의상에서 탈피 해야 겠어!가장 현명한 것은 오프라인 매장에 가서 옷을 걸쳐보고 사는 것이지만,대한민국 평균 여성의 체형에서 한참이나 오버된 나로써는 인터넷으로 빅사이즈 여성복을 검색하며 쇼핑을 시작한다.오프라인에서도 살수도 있지만... 흔치도 않을 뿐더러, 가격이 너무 비싼 경우가 많다.게다가 어느순간부터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옷을 걸쳐보고 사지 않았을 때,점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기가 곤란해져 버렸다.왠지 블라우스 한 장이라도 사야할 것 같은 그런 강박이.. 2015. 7. 10.